극적인 역사로 인해 전설처럼 남는 것들이 있다. 대개의 예술가들이 그렇다. 커트 코베인,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모차르트, 김광석 등. 작품에도 그런 예시가 있을 테다. 제작 과정에서 이슈가 생긴 경우, 작품이 미완으로 남겨진 경우, 작품 뒤의 운명이 전설을 만든 경우 등. 특히나 한국에서, <비정성시>는 마지막 경우일 것이다. 판권 등의 문제로 인해, 온전한 품질의 버전을 본 사람이 한국 내에선 많지 않았을 것이다. 4k로 복원된 판본이 비로소 올해 한국에 당도했지만, 이번 제 2회 서울 아트하우스 영화제에서도 이 영화의 여정은 험난했다. 심의가 등록된 것을 확인한 까닭에 많은 관객들이 추후 정식개봉이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후 정식개봉이 어렵게 되었다는 올라온 mnm의 공지글은 모두를 당황케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목요일 용산 CGV의 15관은 289명이 그야말로 '꽉' 찬 매진의 공간이 되었고, 그들은 모두 이 다시 없을 수도 있는 기회를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중력으로 무장한 정예병들이었다.
이 영화가 한 가족의 비극을 다루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대만'이라는 공간을 다룬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삽입되어 있는 필로우 숏들의 존재는 이번 복원된 버전에서 가장 수혜를 입은 장면들일 것이다. 책갈피처럼 흘려보낼 수 있었던 그 장면들은 스크린에 영사된 4k의 영상으로 인해 어쩌면 최초의 생명력을 얻었다. 지독할 정도로 거리를 두는 롱 숏들의 심도 역시 이 판본에서 유독 선명하게 나타났다.
귀가 들리지 않으며 사실상 말도 하지 못하는 문청은 결국 리액션만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어쩌면 문청은 관객보다 그 세계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친구들은 나라의 앞날을 두려워하며 혼란을 예견하는 이야기를 나누지만 문청은 그것들을 듣지 못한 채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만 유일하게 문청의 귀가 되어주기도 하는, 말하자면 중간계에 있는) 관미와 소통을 할 뿐이다. 가족의 집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인 병원 역시, 철저하게 '리액션'의 공간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액션을 벌이지 못한다. 어쩌면 유일하게 액션을 벌이려는 인물이 관미의 오빠 관영이었지만, 그는 가족과 생이별하고 결국 무참히 진압당하는, 영화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을 온 몸으로 겪는 인물이 된다. 철저하게 무력한 인물들, 민족들.
개인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파도를 이야기하면서도 감독은 그 무력한 개인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끄지 않는다. 관영이 자신의 거처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말을 문청을 통해 전하자 흐느껴 우는 관미와, 관영을 혼자 남겨 두고 온 미안함과 관미에 대한 사랑이 함께 있는 문청의 표정을 연이어 잡는 '유일하다시피 한' 핸드헬드 장면은 베일 것 같이 고정된 구도로 일관했던 영화에 하나의 변수처럼 느껴지며 그래서 더 감정적인 순간을 제공한다.
25.11.20 재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