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의 모든 부분은 대화다. 둘의 첫 만남의 순간부터 대화로 이어지지만, 매 순간이 의미심장하다거나 밀도 높은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진 않다. 어쩌면 대부분이 그저 스몰토크이자 잡담이며 공상적인 대화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 영화 전체를 마치 '각본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 강력한 현실성을 제공한다. 두 인물 모두 공상적인 탓인지, 둘의 여정 또한 그 이유가 비범하다. 나중에 결혼했을 때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될 때 날 떠올리며 지금이 잘 한 선택이었다고 느낄 수 있게 지금 나랑 같이 가자는 제시의 제안은, 자조적인 정서가 담긴 시니컬한 태도이면서 동시에 창의적이고도 귀여운 요청처럼 들리기도 한다. 의외로 이 순간을 '명대사 모음'에 넣지 않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은데, 나에겐 이 순간이 가장 인상적인 명대사가 등장한 순간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대단히 짧은 시간 이내에 관객들을 이 둘에게 완전히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둘이 설레는 순간은 정말로 두 배우가 설레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둘의 사랑은 정말로 두 배우의 사랑 같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들의 시작과 이후의 전개를 거의 똑같이 겪은 덕분일테다. 이 관계의 중요한 순간 뿐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순간까지 모두를 함께 했으니.
<비포 선라이즈>의 대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끝없이 그들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이, 어떤 주제에서든지 둘의 의견이 같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손금을 봐 주는 역술인이나 시를 써 주는 시인을 놓고도 두릐 리액션은 사뭇 다르며,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를 두고도 둘은 언쟁이 생긴다. 셀린은 스스로를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라고 여기고 살았고, 제시는 스스로를 13살짜리 꼬마라고 여기며 살았다. 노파와 13살 꼬마 간의 대화가 통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둘의 대화는 내내 막힘없다. 그것은 아마도 반박을 선전(宣戰)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제시-셀린의 관계는 낭만적인 관계인 동시에 대단히 모범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것은, 계획을 어김으로서 시작했던 <비포 선라이즈>의 이야기가 엔딩에 이르러선 계획을 어기지 않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상황, 계획에 없던 '균열'이었다. 그렇지만 헤어져야 하는 순간 앞에선, 그들은 전날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을 테지만서도) 계획을 엎지 않고 분명하게 헤어진다. 인과를 따진다면 거꾸로겠지만, 엔딩의 그 헤어짐이 견고했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헤어질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순간을 즐기는' 씬들의 개성이 각각 형형하게 빛난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의 엔딩이 명백한 헤어짐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모두 본 우리가 지난 장면들을 떠올릴 때 그것들이 우리를 배반하지 않은 것이다.
한 명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한 편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역시 논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이성적으로 <비포 선라이즈>는 가장 위대한 멜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이유로 나는 이 영화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멜로 중 한 편으로 기꺼이 선정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