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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막의 정복’으로 불리는 원주민 학살이 자행되던 19세기 말, 아르헨티나의 오지 파타고니아에 덴마크 장교 군나르가 딸 잉게보그와 부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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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의 본향에서 cinema를 찾는 리산드로 알론소
서부의 땅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 딸이 어떤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남으로 실종돼 그 딸을 찾으러 머나먼 길을 떠나는 주인공 남자의 이야기. <도원경>에는 분명 서부극의 골조이자 <수색자>의 피가 흐른다. 그러나 <도원경>의 카메라는 서부극의 그것과는 다르다. <도원경>의 카메라는 인습과 남성을 가두는 카메라이다.
<도원경>의 카메라는 감옥과도 같다. 군나르는 카메라로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카메라에서 멀어지며 언덕 저편으로 넘어가려는 군나르. 그러나 다음 숏에서 카메라는 군나르보다 먼저 언덕을 넘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말을 타고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는 군나르. 드디어 프레임에서 사라지나 싶다가도, 바로 다음 숏에서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멀어지려 하자 바로 역숏으로 그의 앞모습을 포착하고, 사라지지만 바로 다음 숏에서 등장한다. 거의 모든 숏에서 카메라는 군나르가 점이 될 때까지 프레임 안에 오래 가두어 두며, 끝내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는 순간에도 역숏을 통해 군나르를 영원히 프레임에 박제시켜 놓는다. 군나르의 이동을 막는 카메라. 군나르가 바라보는 곳은 카메라는 담아내지 않으며, 지독할 정도로 그를 프레임 안에 가둔다. <수색자>의 이든과 유사하게, 딸을 찾으러 군나르는 여정을 떠났지만, 그가 진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는 광야를 맴도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다. 군나르에게 그곳은 도원경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군나르를 향한 변수는 프레임 밖에서 찾아온다. 치명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는 꼬르또를 발견한 지점에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프레임 밖의 (인디언의) 손은 군나르의 모든 무기를 훔쳐간다. 두 번째 변수는 밤에 있다. 말하자면 본작의 두 번째 밤이 찾아오고 잠자리에 드는 군나르의 곁으로 음악이 들려온다. 음악의 삽입이란 기능적으로 관객들에게 프레임 밖 세상을 인지시키는 것에 있다. 음악의 삽입으로 두 개의 레이어가 생기는 것이며 순간 관객은 군나르와 멀어진다. 그러나 그 음악이 끝내 군나르를 (인지적인 관점에서) 깨우지는 못한다.
군나르에게 세 번째 변수이자 힌트가 찾아온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내레이션'. 내레이션 역시 프레임 밖 세계가 있음을 상정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군나르는 듣지만 명쾌히 대답하지 못한다. 프레임 밖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차마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무엇이 삶을 가동시키고 나아가게 하느냐는 질문에, 결국 대답하지 못한 채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지 못하고 그저 프레임 안에서) 사라진다.
반면 잉게는 카메라에게서 쉽게 벗어난다. 물가에서 꼬르또와의 장면이 그렇다. 그녀는 꼬르또보다 먼저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며, 스스로의 행동으로 카메라에서 벗어난다. 이후 한 번 더 잠깐 등장한 이후 내내 등장하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해 21세기의 한 저택에서 '비뵈르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이쯤에서 오프닝을 상기해보자. 군나르와 잉게는 붙어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잉게는 아버지에게 개를 기르고 싶어 한다 말한다. 그 개는 시공간을 지나 '비뵈르크'라 불리는 잉게의 곁에서 등장한다. 잉게는 본작의 인물들 중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듯 그려진다.
시공간은 넘나드는 매개체가 본작에선 '물'로 그려지는데, 물은 본작에서 마치 포탈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 포탈을 인지하진 못한다. 군나르는 잠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 볼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하며, 피타루가는 그저 자신의 성욕을 배설하는 공간으로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잉게만이 그 물에 돌을 던져 파동으로 도원경을 응시하는, 말하자면 프레임 밖의 세계를 응시하는 인물이다.
<도원경>은 서부극이라는 전통적인 'film' 산업의 중심지로 무대를 만들며 동시에 그 전통의 공간에서 만들어졌던 인습을 탈피하는 영화다. 서부극의 주체였던 남성은 길을 잃었고 서부극의 대상이었던 여성은 길을 개척한다. 무엇보다 영화적인 영화다. 영화적인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본작을, 그 중에서도 본작의 마지막을 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