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물 파워트론이 실사판 공연을 선보인다. 무대 바깥에서 그것을 본 아이가 투정한다. "실제랑 다르잖아!" 아이는 그들의 모습을 실제로 본 것임에도, 저건 실제와 다르다며 징징거린다. 영화는 넌지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과연 어떤 모습에서가 한 인물의 실제일까.
한 에피소드가 더 등장한다. 드라마 촬영 현장. 주연 배우 '에리'는 현장에서 동료들과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러나 촬영 신호가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 두 에피소드는 마치 카메라와 미디어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카메라에 포착되는 한 인간의 모습은 과연 그 인간의 몇 %의 본 모습을 담고 있을까.
영화는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영화의 세계도 과연 그럴까. 영화 산업의 위선적인 면모, 영화 촬영의 아이러니. 미마의 새 작품에서의 배역은 강간을 당하고 인생이 바뀌는 인물이다. 루미는 소속 배우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표에게 항변하지만, 대표는 이건 그녀를 스타로 만들 기회라며 묵살한다. 이어진 촬영장에 미마는 피해자 버금가는 수치심을 경험한다. 정색하고 본다면 그것이 '실제'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환히 비치는 조명과 자신을 감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다 나은 장면'을 이유로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수 차례 재촬영해야 한다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실제로 당하는 것과 진배없을 정도의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길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서 잠깐 멈추고, 다시!"라는 감독의 외침이 들릴 때, 옷이 벗겨진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미마의 모습은 예술과 폭력의 경계에 대해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연예계와 무대는 분명히 빛나는 곳이지만, 그곳을 채우는 인물은 빛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미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존재인 스토커 우치다 마모루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존재 역시 무언가 신비로운 자가 아닌, 더러운 밑바닥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가 온라인 상으로 미마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고 그것으로 여러 이들에게 또다시 환상을 가공한다.
배우로 새 삶을 살아가려던 미마 앞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아이돌 미마'가 거의 매 순간 등장하게 된 이후부터 입혀지는 루프 구조는 이 영화의 광기를 제대로 폭발시키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손에 묻은 이 피가 진짜 피인지 헷갈려 하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어제는 히라주쿠에 갔다"의 글을 보고 자신이 어제 히라주쿠에 간 걸 깨닫고, 내가 진정 살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한 것인지 혼돈에 휩쌓이게 된다. 이 영화의 유능한 점은 '끝없는' 루프에 있다. 충분히 셀 수 있는 수의 루프라면 대다수의 관객은 현실과 환상을 엄정히 구분해 읽어내려 하고 그럴 능력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와 같이 끝없는 수의 루프라면 관객은 그 수를 세다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다, '포기'하게 된다. 그리곤 미마가 겪는 혼돈과 마찬가지의 혼돈을 체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미마와 동화되는 것이다. 이 지점을 성취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