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 풀풀 나는, 혹은 홍경표 감독의 하드캐리로 인한 화려한 촬영은 이 영화의 굉장한 장점이다. 안개 낀 겨울을 담는 아름다운 숏들에선 비슷한 소재인 <밀정>의 촬영이 떠오르기도 하며, 아이맥스 카메라를 과시라도 하듯 드넓은 배경을 훑는 롱 숏에서 느껴지는 자신감도 기억할 만 하다. 어설프게 멋을 담아내지 않고 독립투사들의 처절함을 강조하는 전투 장면들도 확실히 기억엔 남는다. 그러나 한편 본작은 이야기에 있어선 낙제점에 가깝다.
이 영화의 공식적인 오프닝은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겠다."는 안중근의 다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본작은 결말에 이르러 맞이한 그 중요한 사건을 다소 심심하고 별 일 아닌 듯 처리한다. 저격은 순식간에 이뤄지고 카메라는 안중근의 얼굴이나 이토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지도 않는다.
물론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소 심심하고 정적으로 처리하는 방식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반례로 <영웅>의 같은 장면을 보자. 장면을 통으로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지속적인 클로즈업에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서 피가 튀는 모습까지 기필코 담아내는 형태는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순간을 충실히 담아낸다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기보단, 장면의 자극성을 극대화한 채 이 장면에선 이런 감정만을 느껴야 한다는 감독의 교조적인 태도가 읽히는 부정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한 면에서 본작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담백하고도 요란을 떨지 않는 그 태도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본작에 있어서 그런 방식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본작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스스로 관객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작전이 가장 중요한 작전이다”, “이 영화에 가장 하이라이트다” 라고 선언을 미리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장면을 그렇게 처리한 것은 관객을 기만하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관객에게 배신을 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선택이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본작엔 플롯이 희미하다. 기-승-전-결에서 승-전이 흐릿한 영화를 보는 당황스러움이 본작을 호평하는 데 주저하게 만든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작전이라는 대전제를 독립투사들이 전개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그저 몇 번의 사건으로만 연결지어 놓으니 관객의 입장에선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영화의 결말을 마주한다. 때문에 엄숙함과 차분한, 장엄함에 비해 러닝타임이 짧다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짧기도 하다) <하얼빈>에 스토리는 있지만 플롯은 없다.
아주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초반의 선택은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이토의 등장 이전까지의 대사들이나 연출들이 상당히 올드하다. 또한 승-전의 컨텐츠를 채우기 위해서인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인상마저 주는 밀정 에피소드는 통으로 들어내고 싶다. 김정출 씬은 우스꽝스러운 만듦새는 뒤로 하고도,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아예 맞지 않는 실패한 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우스꽝스러움이 되려 순간의 흥미로움을 가져오긴 했으니 이를 노린 것이라면 성공한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