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특히 <국외자들>은 반 할리우드적인 요소로 가득 찬 영화다. 그는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으며, 기존의 관습을 하나하나 해체한다. 본작은 겉보기엔 하이스트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해부하고 조롱하며 끝내 무너뜨리는 영화다.
대중영화, 특히 할리우드를 위시한 영화 문법은 내러티브 중심적으로 발달해왔다.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사건이 전개되고, 컷과 컷의 전환은 최대한 '보이지 않게' 다듬어지는 방식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고다르는 이 모든 암묵적인 약속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국외자들>에서는 사운드와 이미지가 충돌한다. 시각과 청각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불협화음이 흐른다. 숏-리버스 숏 구성은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마치 "두 번 이상 촬영함"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드러내려는 듯한 태도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내레이션은 흔히 그렇듯 설명이나 감정 이입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내러티브의 연속성과 정서적 몰입을 의도적으로 흩트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심지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도 서스펜스를 의도하다가도 금세 끊어버린다. 고다르는 끝까지 장르의 기대를 비틀고 농락한다. 엔딩에 이르러서도 그는 할리우드식 작위적인 마무리를 일부러 흉내 낸다. 마치 “이게 너희들이 봐 왔던 식의 끝맺음이지?”라며 끝까지 비아냥대는 듯한 태도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매혹적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여자와 총뿐이다"라는 고다르의 유명한 말처럼, 이 영화는 그 말에 대한 농담이자 실현이다. 안나 카리나의 존재는 영화의 중심이자 동력이다. 그녀의 매력은 이야기 구조보다 더 선명하고, 내러티브보다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삼각관계, 강도 모의, 도망—이런 이야기 구조는 '흔적'처럼 존재할 뿐, 실제로는 영화가 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한 장면을 짚고 싶다. 프란츠가 “1분간의 침묵”을 제안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고다르는 실제로 모든 사운드를 제거한다. 영화가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는 듯한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가장 짜릿하게 느끼게 한다. 관객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낀다. 스스로 해체를 선택했음에도 이만큼의 쾌감을 선사하는 감독이라니, 고다르에게 감사하게 된다.
+ 너무도 인상 깊은 문장을 하나 인용하고 싶다. “영화는 현실 속으로 소멸되지 않고, 현실을 부유하는 환영이 된다.” 이 문장은 <국외자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 영화는 끝내 현실과 융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흘러다니며 관객을 간질이고, 이탈시키고, 흔들어 놓는다. 이것이야말로 고다르의 영화가 여전히 강력한 이유다. 우리는 끝내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 채, 스크린의 바깥 어딘가에 머무르게 된다. 그 낯선 거리감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흡입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