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바이러스의 무서움과 '전파의 조짐'을 슬쩍 제시하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28일 후'의 자막이 등장한 뒤 이어지는 장면은 텅 비어버린 대도시 런던의 풍광이다. 사실상 영화의 오프닝이라 할 수 있는 '텅 빈 런던을 배회하는 짐'의 장면을 시간적으로는 프롤로그의 뒤에 배치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짐이 깨어난 뒤 느꼈을 충격에 버금갈 정도로 관객에게도 충격을 안겨주는 이 오프닝은, 감정의 몰입을 극대화하는 매우 논리적인 편집이다.
쥐 떼들이 몰려오고, 이어서 감염자들이 몰려온다. 본작은 일이 일어날 '조짐'을 탁월하게 연출한 작품이다. 오프닝의 편집에서도 그렇지만, 이후 전개에서도 이 '조짐'은 반복된다. 이를 반대로 이용해,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이 긴장감을 조여가다가 일순간 음소거를 통해 고조시킨 뒤, 서술 트릭으로 반전시키는 연출도 특히 인상 깊다.
본작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단연 조악할 정도의 화질일 것이다. 또렷하지 않은 화질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처럼 불분명하게, 그러나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며 미지의 공포를 가중시킨다.
음향의 사용 역시 본작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평범하고 평온한 장면들은 우아하다시피 한 사운드트랙과 점잖은 음향을 갖추고 있지만, 반대로 본작의 강렬한 순간들은 날카로운 사운드를 활용해 두 분위기 간의 갭을 극대화시킨다. 이는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공포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각인시킨다.
<28일 후>는 흥미로운 인물 구도의 역전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유약하고 나약해 보였던 짐은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며, 처음엔 냉정하고 억척스러워 보였던 셀레나는 점차 무너지고,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이렇듯 짐은 인간적인 위안을 건넬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지만, 그 성장은 단순히 인간적인 단계를 넘어, 인간을 초월한 어떤 형태로까지 치닫는다.
죽을 위기에서 도망쳐 나온 짐은 자신들을 공격하던 군인들을 역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때의 짐은 좀비보다 더 좀비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주인공 일행과 대원들을 권위와 공포로 제압하던 소령조차 결국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다. 짐은 인류를 공격하던 좀비를, 이제는 군인을 공격하는 '이이제이'의 형태로 활용한다. 이는 단지 생존의 방식 그 이상으로, 인간성과 야성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선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