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사랑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라는 말은 연애의 관계에서 격언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 자는 덜 사랑하는 자다. 부부관계가 전혀 없어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도미니코. 반대로 남편 카롤은 이혼하기 싫어하는 눈치다. 아내 도미니코는 더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며, 그의 짐을 모두 건네주고 (서류상으로나 정서상으로나 모두) 이별을 선언한다. 한 푼의 돈 없고 거처할 곳도 없어 서성이다 아내의 매장을 '침입해' 하룻밤을 뉘이다 만난 아내와 다시, 아주 오랜만에, 성관계를 '시도'하지만 여느 때처럼 미동 없는 자신의 남성성 때문에 다시금 도미니코에게 쫓겨나는 카롤. 카롤은 모든 면에서 굴욕을 맛 본 약자이자 패배자다.
이혼을 하고 모든 것을 잃어 길에서 기거하던 카롤은, 투자로 자본을 축적해 권력을 가졌다. 다시 말해, 자본의 축적으로 '덜 사랑하는 자'에 가까운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곤 도미니코에게 비밀스레 다가가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진 뒤 카롤은 도미니코에게 '전 남편 살인범'이라는 용의자의 함정을 씌운다. 자신이 '상승'한 것에 더해, 상대방을 '추락'시킨다. 구치소에서 나가면 당신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도미니코. 비로소 둘의 평등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하여 이뤄낸 평등이라는 결과가 과연 가치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영원히 불을 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평등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이다.
세 가지 색 시리즈는 자유/평등/박애를 소재로 하여, 그것의 본질과 그것의 밑낯에 다가가는 프로젝트다. 아마도 본작은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일 것이다. 가벼운 소품같은 이야기면서 슬랩스틱의 이미지와 블랙 코미디의 이야기를 넘나든다. 짧은 시간에 연달아 나온 작품인 탓인지, 이 세 작품들에서 어떤 '야심'이 느껴지진 않는다. 세 편 모두 걸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거장이 그린 크로키 같은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