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릴리 슈슈는 누구인가? 그녀는 매체나 신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긴 하지만, 묘하게도 그녀의 존재가 실체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대신 릴리 슈슈는, 실존하는 누군가가 아닌 고통받는 각자의 삶이 투영된 무언가로 대변된다. 릴리 슈슈는 누군가의 현실도피다.
<릴리 슈슈>는 감정들의 용광로다. 영화엔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어떤 플롯의 논리는 희미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감정들로 인해 촉발된 일종의 결과물이자 찌꺼기 같다는 인상마저 준다. 이 영화는 악의 없고 위악적이지 않으면서도 순도 100%의 우울을 선보인다. 영상에 텍스트가 섞일 때 느껴지는 모던함 속에서, 화면을 채우는 텍스트 숏들은 사실상 등장인물 혹은 '누군가'가 '관객'에게 발산하는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릴리 슈슈>가 잔인하고도 지독한 영화인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 순수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순수함이 때론 세상살이에 한 템포 숨 트일 순간을 마련해 주기도 하지만, 때론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영화 속 비극들은 우연에 의해 시작된 듯했지만, 결국은 필연이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여행에서 두 번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뒤 호시노는 달라진다. 피해자였던 호시노는 이제 가해자가 되었다. 그의 변화는 연쇄적인 비극을 낳는다. 여럿에게 성폭행당하는 쿠노, 겁이 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이치, 그리고 지속된 원조교제에 익숙해 보였던 츠다의 돌연한 자살까지.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데, 선생은 고작 '성적'에 대해 상담한다.
겉으로는 <매트릭스>보다 한참 느리고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척점에 있을 것만 같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 느껴진다. 컴퓨터의 요소로 디자인된 혼돈의 세기말적 감성, 희망보다는 절망의 분위기.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릴리 슈슈> 속 인물들의 질풍노도의 혼돈은 <매트릭스>가 가지고 있는 그 에너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유이치가 호시노를 죽이고 나서 카메라는 유이치를 포착한다. 천장에 일어서 있는 유이치의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는 장면은 순간 얼어붙게 만든다. 순간 자살을 한 것인가 의심하게 된 그 장면은 감독의 능청스러운 광기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이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상을 살아가지만, 유이치에게는 분명 죽음의 기운이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