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본능 위에 덧씌운 얇고 위태로운 표면이다.
제목은 이상향을 약속한다. 인류가 순수하게 사랑하며 살았다는 신화의 이름을 걸고, 부뉴엘은 그 정반대를 펼쳐 보인다. 영화가 전갈의 다큐멘터리로 문을 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격과 탐지를 겸하는 집게, 꼬리 끝에 감춘 독, 어둠을 향한 편애, 제 고독을 침범하는 자를 향한 적의. 이 목록은 곧이어 등장할 문명 인간의 초상으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겉으로는 로마가 서고 제국의 의식이 거행되지만, 그 근엄함은 사뭇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해골이 된 주교들에게 올리는 인사 위에, 죽음과 부패의 자리 위에 세워진다. 하녀가 불타 죽고 아비가 제 아들을 쏘아도 연회장의 표정은 궁금증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문명이란 본능 위에 덧씌운 얇은 표면이며, 그 표면은 언제나 벗겨질 준비가 되어 있다.
벗겨진 자리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은 두 연인의 욕망이다. 여자는 조각의 발가락을 빨고 남자는 광고 이미지 앞에서 달아오른다. 사회는 이 욕망에 공포로 응답하여, 관료와 성직자와 전화와 교양을 총동원해 둘을 찢어 놓는다. 그러나 부뉴엘의 냉정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랑을 무너뜨리는 것은 바깥의 제도만이 아니다. 여자는 지휘자에게로 옮겨 가고, 죽은 아이들을 두고 환희한다. 욕망은 대상을 파괴하며 그릇을 갈아 치우는 변덕스러운 힘이어서, 성취되는 순간 스스로이기를 그친다. 이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의 유일한 진심이다.
소돔의 성에서 걸어 나오는 학살의 수괴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반어는 완성된다. 문명이 가장 높이 떠받든 신성이 곧 가장 깊은 가해라는 것, 자비의 표정 아래 내내 야만이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 황금시대의 겉면은 바티칸의 석조처럼 단단하지만, 그 내부는 첫 장면의 전갈로부터 한 뼘도 나아가지 않았다. 꼬리 끝의 독은 다만 마지막을 위해 아껴져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