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성벽 사이로 저 멀리서 주인공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이 분명한 그의 모습. 주인공의 첫 등장이 이리도 다급하고 불안하고 위엄 없어 보이는 경우는 존 포드의 다른 영화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성당 안의 어둑한 그림자로 내내 복무하다 잠깐 그의 얼굴에 비치는 빛. 주인공의 얼굴엔 피곤에 지친 인상만이 가득하다. 매춘부인 마리아 돌로레스를 만날 때 역시 그녀에게 내린 빛과 대비되는 그에게 내린 어둠. <도망자>의 주인공인 이 신부는 양지에서 빛나는 인물이 아니다. 끝없이 도망하고, 음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안개는 맥베스의 분위기마저 연상된다. 자욱하고 장엄하다. 호수를 건너는 씬은 너무나 아름다워 이 앞에선 그저 무장해제되는 것만 같다. 표현주의적인 터치에 어느 순간엔 로베르 브레송이 연상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은, <젊은 링컨>과 이 영화의 무드는 유사하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찾는 것은 성인의 망설임이다. <젊은 링컨>의 링컨은 완전무결한 성인의 형태가 아니었다. 망설였고 주저했다. 성경을 은유한 이 <도망자>의 주인공은,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그러했듯이 운명에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불안에 차 있고 인간의 근원적인 연약함이 앞서 드러난다. 가능하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을 드러낸다.
인터미션처럼 느껴지는, 존 포드의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중간자막과 이것이 소개하는 '다른 나라의 성소'는 그 생경한 마주함만큼이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떤 휴식처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제 새로운 막이 시작되려는 듯한. 그러나 바로 다음 씬, 그전에 만났던 행인이 다시 그에게 돌아와 죽음으로 돌아갈 꾀임을 한다.
별세계에 도달한 듯 했으나 기어코 되돌아가야 하는 듯한 운명. 결코 도망할 수 없는 도망자. 결국 그는 돌아가 은행 강도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올린 뒤 순순히 경찰에게 붙잡힌다.
결국 순교자가 된 주인공. 가장 우울하고 비극적인 포드 영화의 엔딩일테다. 그런데 몇 번의 숏 전환과 몇 번의 명암 대비로 만든 엔딩 씬을 다 보고 난 뒤 마음이 충만해지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아마도 서사의 감동과 연출의 감탄이 일순간에 만나 나에게 어떤 편안함을 선사해준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