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로 오인받은 주인공이 스스로 그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북북서>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표면적으로 물론 훌륭한 첩보영화인 동시에 <북북서>는 훌륭한 멜로 영화이다, 무엇보다 불완전한 주인공의 성장 영화다.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이전에 썼던 내용을 편지에 재차 적는 허항된 인물인 '로저 손힐'은 그 능글맞고 능청스러움이 후대에 등장한 '제임스 본드'나 '잭 스패로우' 같은 캐릭터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머니부터 찾는 장면이 상징하듯 그는 분명 미성숙한 인물이다.
미성숙하고 허항된 인물이었던 로저 손힐은 시간을 거듭하며 분명 성장한다. 자신의 처지와도 겹쳐 보이는, 조직의 목적에 맞게 이용당하는 이브를 본 그는 조직의 부장에게 말한다. "반담 같은 놈들을 해치우지 못해 이 여자에게 그들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하려는 거면, 너흰 냉전에서 지는 법을 배워야 돼." 라고.
손힐은 가상의 인물인 '조지 케플란'으로 오해받는다. 이로 인해 분노하고 심지어 곤욕을 겪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조지 케플란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타운젠드'를 살해한 인물로 오해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지만, 반담의 덫에서 탈출하기 위해 또 역설적이게도 경찰에게 스스로를 살인범이라 소개한다. 이브가 반담과 한패라 확신한 이후 둘을 찾아간 자리에서 손힐은 그녀를 향한 애증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앞의 두 상황과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그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의 화술이 아니라는 것일 테다. 그래서 <북북서>는 훌륭한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위기의 순간에서 손힐을 구해주고, 쿨하고 도도하게 접근하는 그녀 이브 켄달은 정말 본드걸 그 자체처럼 보인다. 눈치 빠르고 협력하며 비밀을 갖고 있는 그녀의 존재는 자칫 로저 손힐 개인에 관한 탐구로만 존속할 수 있었던 영화에 균형감을 더해준다. 이는 물론, 그녀를 연기한 배우 에바 마리 세인트의 굉장한 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러 사건이 생김에도 산만하지 않고 물 흐르듯 전개시키는 플롯이 정말 놀랍다. 이 놀라운 플롯과 미친 내러티브로 인해 순간순간의 개연성은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위대한 연출은 이따금씩 사소한 것들을 초월한다. 그 유명한 '경비행기 시퀀스'가 그렇다. '케플란'을 만나기 위해 허허벌판에 내린 손힐을 반기는 것은 영원과도 같은 정적 뿐이다. 별 일 아닐 듯 저 멀리 배경으로만 복무하던 경비행기는 일순간 정적을 깨고 손힐을 덮친다. 손힐과 관객 모두, 이 순간 당황과 긴장감에 더해 공포와 두려움이란 감정이 생기게 된다. 유조차와 부딪힌 경비행기, 이로 인한 여진과도 같은 '2차 공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아포리즘'같은 허깨비의 대사가 아니지만 멋지고 핵심을 찌르는 이 영화의 대사들이 좋다. '의도치 않았고' '멋을 부리려고 한 게 아닌' 손 힐의 첩보 활동들은 이 영화의 핵심 맥락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공간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러시모어 산 석상에서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절정의 위기에서 선보이는 점프컷 등 이 영화는 히치콕의 창의성과 역량이 절정에 다른 영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