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초반에는 우려가 있었다. 능력은 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던 여성 주인공이, 반대로 능력은 없으면서도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남성들을 역전하고 몰아내는. 근 10년 간 우리가 집중적으로 본 이야기일까. F적인 이야기는 10여년 전만 했어도 개성적이었고 강렬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물결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된 지금은, 그 소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와 주제를 다 예측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피로함이 생긴 것도 분명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메인스트림을 비판하는 것이 너무 메인스트림해졌다는.
하지만 나는 끝까지 본작의 감독 샘 레이미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구제불능일 정도로 무능하면서도 회개할 줄 모르는 브래들리에 대한 스탠스는 끝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명백한 피해자였으며 분명한 선처럼 보이는 주인공 린다에게도 죄이자 업보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조난을 당한 후 오래지 않아 시야에 포착된 구조자들을 봤음에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못 본 체 했던 선택까지는 브래들리의 '교육'을 위한 린다의 귀여운 의도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 연장선상으로 벌어진, 브래들리를 찾으러 배를 타고 온 (말하자면 아무 죄 없는) 그의 약혼자 주리와 선원을 죽여버린 린다의 행동마저는 (이제껏 고통받았던 린다의 처지를 고려한다 해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지 않은가.
이 지점에 다다르자 두 주인공 간 선역과 악역의 경계는 상당 부분 희석되며, 두 인물 간 죄의 무게는 이제 비슷한 (혹은 린다가 브래들리를 추월한) 수준으로 지워져 있다. 이야기적으로도 흥미로운 이 설정이지만 장르적으로 이것이 절묘한 까닭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둘 간의 결투에서 어느 쪽에도 감정적인 짐을 지지 않고 신나게 서로를 때리고 부술 수 있는 환경이자 무대를 마련한다는 것에 있다. 매우 폭력적인 연출로 둘 간의 격투가 등장하지만 우리는 애태우는 마음으로 한 편을 응원하지 않게 되고, 그저 죄책감 없는 마음으로 그것을 오락으로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도 선명한 임팩트를 남긴다. 관계가 화해와 용서의 무드를 보여주며 둘은 우정을 넘어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도, 계속해서 린다를 배신하고 도망가려는 브래들리. 그리고 그런 브래들리를 결국은 끝내 없애버리고 순백의 영웅으로 남는 린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레이첼 맥아담스가 이러한 억척스러운 사회인 역할에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 그녀의 연기력을 감탄하게 되기도, 이제 어느덧 50이 가까워졌다는 그녀의 나이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