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모범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가학적인 터치를 통해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간편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분명 이 영화엔 배설물과 남성의 나체와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이를 도색적이고 선정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으며 이들의 투쟁을 부각시키는 목적만으로 의미있게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 내내 들끓는 강렬한 시각적 에너지와 대비되게, 청각적으론 한없이 절제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침묵이라는 모티브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때론 내내 발광하고 자극적인 괴성으로 무장한 방식보다 곤고한 침묵의 진정성이 효과적이다.
쉽사리 한 쪽의 편을 들어 정치적 선전의 용도로 영화를 소비하지 않는 감독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신념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보비 샌즈의 숭고함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러한 극한의 행동이 불러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변수나 후유증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인물의 대담 시퀀스에서 주인공 보비의 의견만이 아닌 모란 신부의 의견 역시 '균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은 단연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더욱이 영화의 이야기를 한 인물의 신화로 다루지 않으려는 감독의 선택 역시 의미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마이클 패스벤더가 분한 보비 샌즈이지만 그는 영화의 1/4 시점부터 등장한다. 그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영화는 교도관, 간수, 수감자 등을 비춘다. 이 영화가 그들 모두의 이야기며 한 영웅의 신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내가 원래도 좋아했던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머시니스트>에서의 크리스찬 베일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감량이 이러한 쪽에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 영화에서의 마이클 패스벤더의 모습 역시 대단했다. 영화의 처음에서 끝까지, 그야말로 투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