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도 낡지 않은 모던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수많은 매체에서 인용되고 오마주되었기에 그 내러티브는 이제 익숙한 형태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인 형태로도 감탄과 감동을 전달하는 원조의 작법은 훌륭하게 평가할 만하다.
예전엔, 멜로라는 장르에 대해 의미없는 반발을 한 적이 있었다. 왜 멜로의 주인공들은 항상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만 등장할까? 평범한 외모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멜로가 진짜 멜로가 아닐까?
최근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많은 멜로 장르에서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관객들이 극중의 인물들과 같은 사랑에 빠지고 이를 통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빠르게 이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의 오드리 헵번을 보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에서의 그레고리 펙을 보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멜로라는 장르 안에서, 주인공들의 빛나는 매력은 종종 각본과 연출의 그것을 넘어서기도 한다.
지나치게 예쁜 장면들이 가득하고 설정은 간편하게 도식적인 측면이 강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점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영화의 매력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순간을 평생 사랑할 것 같다.
.
.
.
.
+ 최근 보석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롯데시네마가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이런 작품들을 극장에서, 그것도 리마스터링된 화질로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고전들은 재개봉이지만 나에게는 최초 개봉이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는 자랑을 훗날 할 수 있어 기쁘다.
오드리 헵번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레고리 펙은 너무나 멋지다. 본작은 말하자면 오드리 헵번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이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늦은 밤, 수면제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낯선 남성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영화들 중 열이면 아홉 이 장면들에서 성적인 긴장감을 조성했을 텐데 (혹은 조성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그러한 성적인 코드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아마도 오드리 헵번이라는 인물의 타고난 순수함과 사랑스러움 때문이었으리라.
클리셰를 넘어 고전이 된 영화답게 코미디와 로맨스 두 부분에서 착실하게 점수를 쌓는다. 특히 이번 관람에선 코미디 부분이 눈이 갔다. 지각을 해 놓고 능청스럽게 둘러댄다거나 사적인 욕심으로 공주에게 접근하는 조의 모습, 헨리와 조의 슬랩스틱, 한밤중의 소동. 달콤하기까지 한 로맨스로 본작이 유명하지만 그만큼 군데군데의 소소한 유머들도 본작의 분명한 강점이다.
고전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매우 유명한 고전인 덕인지 극장의 반이 장년층 이상이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는 웃음소리가 크게 이곳 저곳에서 들렸다. 여느 때였다면 상당히 신경 쓰였을 정도였지만 이번엔 그 웃음소리들과 속닥이는 잡담들이 썩 듣기 싫지 않았다. 아니 듣기 좋았다. 나까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