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는 언제나 (본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제를 건넨다. 본작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에선 다소 도식적이지만 흥미로운 소재로 그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들은 '접촉하지 않는' 춤을 연마하는 인물들이다.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여지는 것이며, 접촉하지 않고도 서로를 느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선생님은 지도한다. 치히로는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과 살고 있는 자로, 우울과 고독의 정서가 그의 삶에 산재해 있다. 그는 인간과의 접촉을 꺼리며, 오히려 도로바닥 같은 무생물과의 접촉을 더 편하게 느낀다. 그의 삶은 그의 '일'과 닮아 있다.
반면 그의 동료 나고야는 일상에서도 접촉을 꺼려하지 않는, 말하자면 여느 일반인과 같은 인물이다. 그에게는 연인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고, 나고야는 다시 잘 해보려 그녀를 붙잡는다. 그 사이 그녀는 치히로와 마주치고, 왜 나고야와 헤어졌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물어 피를 내며 "너에게 그 말 듣기 싫어"라고 답한다. 이에 치히로 역시 손등을 더 세게 물어 피를 내며 응수한다. 다소 과잉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그러나 치히로라는 인물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상대를 절대 해치지 않는다. 접촉하지 않는 자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곧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여러 차례의 연습 끝에 치히로는 마침내 접촉하지 않고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나고야가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회성이라곤 전혀 없이 타인과 벽을 두고 사는 치히로 대신, 타인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나고야가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 접촉(소통)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또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그래서 말하자면 하마구치가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인 본작 같은 작품이 소중하다. 거장의 보다 비타협적이고 거친 습작의 모양새에서, 우리는 오히려 거장의 가장 솔직한 지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구로사와 기요시와 가까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마구치는 작정하고 스릴러물을 만들었어도 수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하마구치는 서스펜스를 만드는 스스로의 역량을 '스릴러'나 '공포'의 왕도로 꾸며가지 않고, 자신이 밀고 나가는 '드라마'에 마치 고무줄을 걸듯 팽팽한 장력을 설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는 그 긴장감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