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The World of Love

2024 · 윤가은 · 한국
세계의 주인 포스터
120분 · 드라마 · 12세 이상 · 출연 서수빈, 장혜진, 김정식, 강채윤 · 음악 이민휘 · 촬영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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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고 짓궂은 열여덟 살 여고생 이주인의 한마디가 주변을 혼란에 빠뜨린다. 뒤이어 주인을 추궁하는 익명의 쪽지가 도착하면서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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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어쩌다 나에게 준 결핍을 나는 디디고 걷으려 한다

다짜고짜, 오프닝부터 교복을 입은 남녀의 키스 장면이 제법 긴 시간 동안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사실 이곳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중동도 아니지만, 이 장면을 가장 강력하게 휘감고 있는 정서는 무언가 모를 '위태로움'이다. '범죄'와 같은 모티프는 아니지만, '순수'의 모티프 또한 아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이성을 놓은 듯 '과하게 조숙한' 몸짓이기 때문이었을 테다. 2시간 동안 본작을 지배하는, 미묘한 지점에서 위태위태한 정서를 이 오프닝 씬에서 마치 예고하고 있는 듯한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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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황재일의 출소를 반대하는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반 친구 수호에게, 이 내용에 공감할 수 없다며 나도 성폭행 피해자라고 언뜻 '질러버리는' 주인의 모습은, '농!담!'이었다며 비트는 직후의 그녀의 모습이 더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에 대해 위태로운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리곤 직감적으로, 그녀의 처음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리고 멀지 않아 관객의 그 직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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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아직 망가지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 요구하는 주인의 장면은 아주 비전형적으로 '멀리서' 촬영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장면에선 열이면 여덟은 주인과 수호를 클로즈업으로 교차해 보여주는 숏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롱숏을 선택했다. 그것도 교장실에 있는 모두를 프레임에 거는, 마치 마이크 리의 최근작 <내 말 좀 들어 줘>의 가장 훌륭한 숏을 떠올리게 하는 숏으로. 말하자면 그 숏은 그 순간 말을 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 공간과 세계가 더 중요하다며 말하는 숏이다. 당당하게 세계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주인의 '액션'만큼이나, 주인의 세계 속 인물 중 한 명인, 그 대사를 '리액션'해야 하는 (받아내야 하는) 수호라는 캐릭터도 중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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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어른스럽게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주인. 그렇지만 그녀라 하여 왜 쏟지 않을 분노가 잔존하지 않았겠는가. 이어지는 세차장에서의 장면에서 주인은, 자신을 믿지 않고 외면했고 소홀했던 엄마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다른 어느 곳에선 보여주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주인의 모습. 유일하게 주인이 이러한 모습을 보인 곳은 '시끄러운' 세차장이다. 시끄러운 곳에서야 비로소 소리 지를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피해자는 '쥐 죽은 듯이' 살 것이다, 혹은, 피해자는 쥐 죽은 듯이 '살아야만 한다'고 사회가 여긴 탓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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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장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 순간이 괴물과도 같은 이유는 명백히 이 장면에 힘을 줬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기에, 마치 타석에 들어서면서부터 홈런을 예고하는 타자와 같다. 모두가 홈런을 기대하는 순간엔 안타로도 그들을 만족을 시킬 수 없다. 그러나 기어이 홈런을 때려내는 스타처럼, 올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윤가은 감독. 경력이 일천하다시피 했던 배우 서수빈은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배우가 배역과 완전히 동화된다는 것이 저런 걸까 생각해보게 된 순간. 모든 연기는 액션을 하는 인물에 버금가게 그 옆에서 그것을 리시브해주는 인물의 역할이 중요한데, 절대적으로 리액션만을 담당해야 했을 '엄마' 역의 이정은의 연기는 얼마나 어려운 과제였을지 채 짐작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딸의 분노가 모두 끝나자 "한 바퀴 더 돌까?"라며 묻는 그녀의 모습. 이런 순간이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대사의 '출력'. 그렇게 냉정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마주한 끝에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었을 테다. 그것을 관객에게 자연스레 납득시키는, 이 순간의 연기는 주연과 조연의 모습이 고루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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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인>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 중 하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악의 없이 주는 상처'라는 그 씁쓸한 순간들이다. 어머니가 안 계신 어린이집의 '누리'라는 아이를 두고 그곳의 보육교사는 태선의 앞에서 '편부모 아이의 결핍'에 대해 이야기한다. 태선의 가정이 현재 그와 비슷한 상황인 것을 아마 몰랐을 테지만 그녀는 태선에게 상처를 주었다. 수호도 마찬가지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남은 삶이 고통 속에서 망가진 삶을 산다 말하지만, 그 말이 피해자들에겐 낙인을 찍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고 디디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고통 속에서 망가진 삶을 살게 된 것이 안타깝다"라는 말은 위로를 빙자한 낙인을 새기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물론 수호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고 선의로 시작한 프로젝트였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인의 과거가 '오피셜'로 공개된 이후 반 친구들의 '과한 조심'. 주인은 괜찮다는데 친구들이 두 번 세 번 더 진짜 괜찮냐고 물어보는. '악의 없음'으로 출발했을지라도 궁금증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 주인이 그것을 꼭 말했어야 했을까, 그게 진짜는 맞을까, 트라우마 없이 저렇게 사는 게 가능한 걸까, 남자친구가 자주 바뀌는 것이 성 집착의 부분일까. 친구들의 궁금증은 편견을 만나 프레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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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프레임대로 행동하지 않는 타인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주인은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녀를 평범한 1인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 '악의 없는 상처'의 책임은 주인에게도 있다. 찬우에게 먼저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찬우가 더 나아가려고 하자 황급히 밀어내는 주인. 그것이 주인의 트라우마 때문이라 말한다면 이해할 만은 하지만, 매번 찬우를 밀어내는 주인은 찬우로 하여금 매번 모멸감과 마치 자신이 '가해자'의 위치에 놓인 듯한 감정을 주는 것이다. 피해자가 어떠한 의미에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결핍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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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결핍은 매몰차게도 성장을 강요한다. 그래서 어떤 결과(성장) 뒤엔 무겁게 견뎌 온 시간들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그렇다. 자신의 누나에게 끔찍한 짓을 하고도 계속해서 집으로 편지를 보내 오는 삼촌의 우편을 차마 누나가 읽지 않게 계속해서 그것들을 숨겨 왔고, 자신의 마술쇼에 가족이 한 명도 오지 않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고 무대를 이어가는 동생 해인의 모습들이 바로 그렇다. 주인만큼이나 해인도 일찍 어른이 된다. 일찍 철이 든 그 아이를 두고 기특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몰차게 성장을 강요하는 순간들이 이 세계에는 분명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러닝타임 동안 학생1, 학생2 등으로 여겨졌던 반 친구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편지의 화자로 등장하는 엔딩은 그래서 본작의 주제가 응축된 장면이다. 다만, 엔딩의 방식이 다소 직설적이고 다소 기능적인 탓에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개인적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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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연으로 분한 고민시의 연기를 언급하고 싶다. 고민시의 때 묻은 청춘 연기는 독보적이다. 아마도 데뷔 이전 했던 사회 생활들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제법 극적인 주인공의 이야기임에도 본작이 판타지의 위치로까지 떠내려가지 않은 까닭은 내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었던 고민시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실 도무지 일반인으로 보이진 않는 외모를 가진 배우임에도 그녀는 외모라는 일종의 핸디캡을 능가하는 평범함의 힘을 지니고 있다. 정말 다재다능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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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동아시아 청춘」 지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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