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 치고도 굉장히 폼을 잡는 초반부지만, 또 어째 잘 어울린다. 마치 40년대의 필름느와르와 탐정물을 결합한 듯한 이야기의 초반부는 톡톡 튀는 강렬함은 적지만 차곡차곡 서사와 감정들을 쌓아간다. 동시에 사건들은 예고 없이 등장하니 이건 스릴러가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
또한 DC는 이 영화에서 타협을 제한한다. 블록버스터가 지나치게 어둡다면 흥행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많은 대중들은 권선징악을 원하고 푸르른 내일을 보고 싶어한다. DC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었겠지만, <더 배트맨>의 분위기는 사뭇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절망적이다. 영화의 질감은 끈적하고도 음울하고, 주인공은 히어로 무비 사상 전례 없었을 정도로 잔혹하기에 고담의 시민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히어로. <더 배트맨>의 방향성이 그렇다.
많은 설정들이 쌓여가지만, 이야기보다 인물이 중요한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내레이션이 있었던 영화가 있던가.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의 영화가 아니었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 그 자체를 탐구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빌런 역시 질문자인 '리들러'로 낙점되었을 것이다. 배트맨은 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스스로와 대면하게 된다. 적들을 해치울 때 자신이 하던 말과 똑같은 말을 내뱉는 적을 마주하며 배트맨은 번민하고, 웨인 가의 진실에 다가가며 브루스 웨인은 동요하고 성장한다.
이 시점에서 폴 다노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다. 이미 <데어 윌 비 블러드>, <프리즈너스>와 같은 영화에서 증명한 바 있지만, 그는 관객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 중반 압도적인 아우라를 보여주는 자동차 추격씬들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속 가져온 빌드업에 비해 하이라이트의 임팩트가 작고, 내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빌런 리들러 역시 정체가 밝혀지고 나선 소박한 수준에 그친다. 물론 이 영화는 배트맨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이기에, 서사의 화룡점정이 상대적으로 밋밋한 것이 이 영화에 대한 호의 감정을 모두 무산시키는 요소로까진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