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이 디자인한 고담 시의 비주얼은 놀랍다. 사이버펑크의 외피와 대도시의 번화가가 섞인 듯한 이 비주얼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7년이 흐르고 등장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와 필적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본작의 배트맨의 형상은 박쥐 망토가 인상적인 코믹스 히어로의 이미지다. 이후 등장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배트맨의 외형은 블록버스터의 향기가 진한 인간병기의 느낌이 강하다. 취향의 차이겠지만, 영화 전체가 아니라 배트맨이란 캐릭터 하나만 놓고 보면 나는 삭막한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보단 통통 튀는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이 더 좋다.
배트맨 프랜차이즈에서 조커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의 조커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연극적인 연기가 과장되지만 모두 납득되고 소름이 끼친다. 테러리즘 전위예술가인 이 조커는 히스 레저의 조커보다 우아하고 예술적인 면모가 인상적이다. 미술관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공간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시퀀스는, 사운드트랙으로 흐르는 프린스의 음악과 함께 길이 남을 것이다. 잭 니콜슨은 감동적일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내가 이 배우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대체 누가.
조커는 젊은 시절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강도 살해했고, 브루스 웨인 배트맨은 잭 네이피어를 염산에 떨어뜨려 조커가 되게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창조한 아이러니한 아치 에너미. 운명으로 얽힌 둘의 마지막 대결은 그래서 선과 악의 결과를 가리는 영화의 피로한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