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모르는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는 동환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과거를 알고 있는 40년 전의 지인들에게 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위선과 편견, 멸시와 분노가 겹겹이 쌓인 기억의 조각들을 마주한다. 이는 곧 그의 개인적 탐색을 넘어 시대와 사회의 단면으로 확장된다.
<얼굴>은 편견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더 정확히 위선에 관한 영화다. 그 위선은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드러난다. 동환 어머니의 장례식에 생전 처음 본 어머니의 친족들이 찾아와 대뜸 재산 이야기를 꺼내고, 영희가 그리 좋은 인물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먼지털이를 하며 자신들과 거리를 두는 장면은 그 위선의 한 단면이다. 과거의 영희를 기억하는 어른들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싹싹하게 굴던 PD 역시 실은 가방 속 카메라로 상황을 몰래 녹화하고 있다. ‘진숙’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도, 옆자리에서 이를 지켜보는 동환의 시선은 그 눈물이 진심일지 위선일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영화 속 편견은 단지 ‘추한 얼굴’을 가졌다고 기억되는 어머니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향한 편견, 그들이 자신들의 멸시를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착각. 편견은 멸시와 친하고, 멸시는 분노를 부른다. 평생 놀림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결국 그것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깨달은 자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마저 자신을 가볍게 보고 접근한 것이며, 결국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영규의 뒤틀린 분노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그는 결국 하나의 진리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자신이 판 글자가 아름답기 때문이며, 세상은 아름다움에 추앙을, 추함에 멸시를 보낸다는 것을.
그렇기에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얼굴을 묻는다. 집요할 정도로 영희의 모습은 뒷모습으로만 등장하며,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누구보다도 궁금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범하다. 만약 그녀의 얼굴이 여러 인물들의 말대로 ‘괴물 같았다면’, 우리는 “그럴 만했네”라는 감상을 가졌을까. 반대로 (사진에 드러난)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보고도 우리는 반사적으로 “이 정도가 왜?”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영화는 관객 스스로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만든다.
박정민은 이미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에게 단점이 있다면 거대한 영화의 단독 주연으로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라는 물음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본작처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에서는 그 의문이 사라진다. 영화 전반적으로 회상 장면들이 다소 길어 늘어지는 듯한 인상도 있지만, 어쨌거나 영화 내내 매우 흥미로움을 잃지 않으며, 주연 세 배우의 연기는 올해의 연기로 손꼽아도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