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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도시에서 온 여자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남자와 우연히 만난다. 어느 겨울, 슬럼프에 빠진 작가는 눈으로 덮인 산속에서 홀로 여관을 지키는 주인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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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상실된 낯선 세계에 당도한 자의 소박한 기적들
말하자면 1부의 공간은 J의 공간이다. 1부는 각본가로서의 '이'의 모습과,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각본가라는 직업은 영화 제작의 과정에서 가장 '계획을 세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작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각본'이라는 '계획'을 가지고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이'는 그 공간 안에서 P이고 싶은 사람이다. 그는 말을 적어 먹고사는 인물이지만, 살다 보면 세상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말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하지만 (마치 세계가 초자연적으로 부여하는 듯한 힘에 의해) 언제나 말에 붙들린다고 한다. 그런 발버둥으로 인함일까, 그녀는 건강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그녀가 각본가로 참여한, 1부의 영화 속 영화를 평가했던 평론가는 이 영화가 계획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없었기에 좋았다는 식의 평가를 남겼다. 계획적이지 않음을 호평했던 평론가. 직후 그는 사망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드러나는 설국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는 2부. 예약도 없이 찾아갔기에 가는 곳마다 퇴자를 맞는 호텔을 지나 당도한 곳은 전혀 계획도 없었던 산 속의 여관 같지도 않은 여관. 침대 하나 없어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보낸 하룻밤을 지나 눈 뜬 아침의 모습은, 예쁜 미꾸라지와 하얀 눈 등의 생생한 모습들이다. 이것을 보러 온 것이 아니고, 이것을 보게 될 줄도 몰랐지만, 생생히 내 눈 앞에서 보이는 것들이 '이'의 눈을 씻는다. 그곳에서도 관성처럼 그녀는 각본을 써 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무료하게 있는 듯한 주인 벤조에게 '비단 잉어 사업'을 해보라 제안하는 이의 말에 벤조는 심드렁한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큰 연못이 있는 옆 동네로) 가보자는 벤조. 옆 동네로 잠입해 둘은 함께 잉어를 훔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예측이 안 되는, 즉흥의 영역처럼 보이는 이 세계. 그러나 그 와중 벤조는 계획을 만들었던 것 같다. 봄까지 잉어를 연못에 풀어넣고 이의 말대로 정말로 사업을 할 계획을. 그러나 잉어는 꽁꽁 얼어 버리고, 몇 백만 엔으로 불릴 씨앗이 돼야 했을 잉어는 한 마리의 구이가 되어 버린다. 한밤에 옆 동네를 조용히 습격해 세운 완전범죄는 다음 날 방문한 경찰들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벤조는 열이 나 병원에 가게 된다. 이는 얼떨결에 여관을 지키게 된다. 2부의 공간은 1부의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말하자면 P의 공간이다. 계획을 세우면 망가지고 병이 나는 공간이다.
이야기적으론 계획의 감옥에 지친 주인공의 힐링을 찾아 떠난 여행이기도 하며, 1부와 2부를 나눈 구조는 텍스트를 버린 채 스크린에 상영되어야만 하는 영화는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가 각본을 쓰는 모습과,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영화 속 영화'가 교차되는 1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미지가 등장하면 텍스트를 상상하고 텍스트가 등장하면 이미지를 상상한다. 1부만 보았을 때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텍스트와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닌가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2부에서 이미지가 등장할 때 우리는 쉽게 텍스트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들을 글자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50년대로 돌아간 듯한 1.37:1의 화면비. 그리고 꽃, 절벽 등을 책갈피처럼 넣는 필로우 숏. 1부는 오즈 야스지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숲을 거닐 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떠올리기도 하며, 푸른 바다의 색감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나, 테크니컬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차이나타운>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실 미야케 쇼가 이러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감독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영화의 다른 면 뿐만 아니라 미술적인 부분에서도 미야케 쇼는 본작을 통해 새로운 경지로 성큼 다가선 듯 했다.
바위를 호수에 던져 파동을 부르는 감독은 흔하다. 하지만 자갈을 호수에 던져 파동을 부를 줄 아는 감독은 흔치 않다. 미야케 쇼는 누군가에겐 찰나이자 '아무 일도 아니었던' 일들을 포착해,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파동이자 변화를 포착해 낼 줄 아는 보기 드문 감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