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영화는 왕가위, 타르코프스키, 데이빗 린치, 히치콕의 작품들의 레퍼런스로 가득하다. 특히나 타르코프스키와 왕가위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공간(특히 터널)에서의 이미지와 색감, 고여있거나 떨어지는 물의 이미지, 심지어 떨어지는 유리컵까지(!!) 많은 부분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를 연상케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너무 자주 등장하고 노골적이라 살짝 웃기기도 했지만 감독의 팬심 폭발이라 생각하니 귀엽게 느껴졌다.
초반의 몽환적인 이미지나 내레이션은 왕가위의 그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기억이나 욕구가 꿈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혹은 데이빗 린치의 <멀홀..>이 생각났다.
또한 추가적으로 초반에 꽤나 미스테리하게 등장하는 탕웨이 그리고 초록의 원피스. 이건 분명 히치콕의 <현기증>이다.
기술적인 면을 생각해보자면 꿈의 질감, 세상을 유영하는 느낌을 구현한 방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2부는 전체가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과거의 기억이나 현재의 사건들이 2부에서 한자리에 변주되어 모이는 순간은, 다른 작품에서 비슷한 것을 몇 번 봤었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감정을 받게 된다.
다만 나에게 걸리는 일말의 부분은, 이 영화의 독창성이 과연 얼마나 있냐는 것이다. 영화 자체가 오마주로 가득찬 비슷한 예시로 <킬 빌>을 들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순간의 이미지들을 차용해 타란티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오락을 만들었다는 데 개인적으로 큰 의의를 두었다.
허나 이 영화는 전반적인 이미지부터 플롯, 주제의식까지 많은 영화들에서 따왔는데, 극단적으로 말해 이것들을 모두 제하고 봤을 때 남는, 감독만의 개성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젊은 감독이며 이 영화에서 보여준 능력과 야심만큼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낀 만큼, 이 감독이 차기작에선 과연 자신만의 어떤 비전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