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아이들Children of Nature

1991 ·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 · 독일, 아이슬란드
후보 · 아카데미 국제장편상
자연의 아이들 포스터
85분 · 로맨스 · 드라마 · 출연 Gísli Halldórsson, Sigríður Hagalín, Baldvin Halldórsson, Björn Karlsson · 음악 Hilmar Örn Hilmarsson · 촬영 Ari Kristin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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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며 순수와 자유를 노래하는, 경이로운 영상미와 서사로 완성된 마스터피스

지금껏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영상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상미라는 것을 두 갈래로 나눈다면 인공적인 면을 극대화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것이 있고, 자연의 본연적인 모습을 부각시켜 시각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있겠다. 전자의 경우 뮤지컬 영화들이나,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더 폴>, 또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편집이라는 인공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영상미를 만들어낸 경우는 왕가위의 작품들이나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 같은 경우가 있을 테다. 반면 인공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자연 자체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후자의 경우 모뉴먼트 밸리가 등장하는 존 포드의 영화라든지,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라던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라든지, 태렌스 멜릭의 영화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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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은 아마 후자의 경우로 둘 수 있겠다. 그러나 좋은 영상미라는 것은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와 정확히 조응할 때 그 존재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작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영상미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프리드리 토르 프리드릭슨은 본작에서 성결함과 순수함을 본다. 본작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죽음이 가까운 '노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조용히 여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같은 공간 속 여타의 동년배들과는 달리 가는 길도 분명치 않은 고향 '호른스트란테'로 되돌아가겠노라며 요양원을 탈출한 채 차를 훔쳐 여정을 떠나는 것이 본작의 이야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나 요양원의 직원 등) 어떤 이들의 시선에선 그들이 환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자이자 기어이 정신이 나가 헛소리만을 늘어놓는 골칫덩이. 그러나 한 마디 말 없이도 감독은 그들의 여정에서 순수함만을 응시한다. 본작의 탐미적인 촬영이 그들의 무데뽀스럽고 무작정인 듯한 여정에 위엄을 부여해 준다. 아이와도 같은 이들의 순수함을 욕되이 일컫지 말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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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아이들>은 비슷한 시기 있었던 <안개 속의 풍경>의 형제 같다. 본향을 향해 가는 환상적인 여정이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위태로운 발걸음을 관조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안개 속의 풍경>이 그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통해 현실의 가혹함을 바라보았다면, <자연의 아이들>은 삶의 끝자락에서마저 잃지 않는 자유와 순수함을 온전히 존중하는 시선을 견지한다. 두 영화는 모두 떠남과 길 위에서의 방황을 다루지만, 전자가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반해 후자는 남은 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경외를 발견하게 만든다. 프리드릭슨은 그들의 여정이 한낱 도피나 반항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려는 숭고한 의지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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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사라짐이 있다. 그저 "자취를 잠췄다" 식의 비유적인 표현을 시각화시킨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두 번의 사라짐을 마치 포털이라 생각해 본다면 첫 번째 사라짐을 현세에서 연옥으로의 이동이라 보고, 두 번째 사라짐을 연옥에서 천국으로의 이동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첫 번째 사라짐은 '죽음'이 될 것이다. 실제로 첫 번째 장면에선 '사고사'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전방이 위험한 공사현장으로 보임에도 무작정 돌진하는 두 주인공, 주위엔 바위가 가득한 외길, 급히 그들을 좇지만 이내 멈추는 관계자. 그리고 바로 다음 숏은 (밤으로 변하였고) 등불과 깃발로 장식된 다리를 건너 축제가 벌어지는 어떤 공간으로 도착한, 직전 씬과 완전히 다른 톤으로 전환돼 생경함마저 느끼게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세계에 도착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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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라짐을 보자.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참으로 애틋한 플래시백이 흐른 뒤 모든 여한이 없다는 듯 사망한 스탠리의 장례를 치른 후 토게르는 정신이 나간 듯 맨발로 해변을 서성인다. 그녀의 마지막을 홀로 두었다는 죄책감, 삶의 의욕을 잃은 무력감 때문이었으리라. 그곳에 '경찰'이 온다(헬기의 시점 숏). 당연히 경찰이 주인공들이 만난 이들을 통해 그곳에 당도하진 않았을 터. '경찰'은 '현실'을 상징한다. '현실'의 땅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이자, 현실의 땅에서 주인공이 행한 범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토게르가 경찰을 따라 헬기에 올랐다면 그는 조금 더 살았을지언정 '과거'를 후회하며 여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그에게 구원을 허락했고, 토게르는 경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사라짐'을 통해 연옥에서 또 다른 어딘가로 이동한다. <자연의 아이들> 속의 직유와 은유는 매우 우아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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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아이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를 탐구하는 한 편의 시적 여정이다. 자연 속에서 사라지는 두 노인의 모습은 단순한 죽음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영화는 그들의 여정을 통해 순수함과 자유를 찬미하는 동시에,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존엄과 의지를 깊이 있으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그려낸다. <자연의 아이들>은 노년의 방황과 구원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마지막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숭고하게 조명한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살아 있는 것에서 죽음을, 폐허에서 생명을」 지도›「울고 나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지도›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1편›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
소재
아이슬란드가 배경인 영화4편›
노년을 다룬 영화가 좋았어27편›
탈출극이 좋았어36편›
시골이 배경인 영화가 궁금해48편›
헬기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85편›
우정을 다룬 영화가 좋았어133편›
멜로·로맨스를 더 보고 싶어211편›
리뷰
리뷰에서 함께 이야기한 영화6편›
음악·촬영
음악 · Hilmar Örn Hilmarsson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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