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롱의 굳은 얼굴과 발걸음은 6~70년대 유럽 영화계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의심받아 그 의심을 떨쳐내려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물론 본작의 '동명이인'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영화 전체로 보면 사실상 유령과도 같다. 이와 동시에 어떤 순간엔 클라인이 의도치 않게 그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조셉 로지는 카메라워크에 관해 통달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듯 공격적으로 움직이며 클로즈업으로 들이밀다가도, 클라인이 미지의 공간으로 입성할 때는 마치 그에 이입된 듯한 공포스러운 시점 숏을 선보이기도 한다. 본작의 촬영감독이 이름 있는 '게리 피셔' 감독이라는 사실 또한 놀랍지 않다.
폭력적인 뉘앙스 가득하게 여성의 얼굴을 만져대며 분석하는 의사. 그리고 그녀는 나체로 서 있다. 분명 이상한 광경이다. '형태학'과 '행동학'에 근거해 유대인 '의심군'으로 분류하는 이 장면은 영화가 지닌 전체적인 불안과 광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자신이 유태인이라고 몰리는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클라인은 결국 체포되어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버스에 강제 탑승된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사람들이 더더욱 많은 '수용소'다. 수용소의 전경을 비출 때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톤으로 본격 전환된다. 온종일 클라인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그를 군중 중 하나의 인간으로 둔다.
증명서가 도착했음에도 클라인은 군중에 떠밀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채 지나친다. 철두철미한 인생을 산 클라인은 그렇게 어이없게도 잡혀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