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재난 영화는 영화의 초반 15분 안에 '재난'이라는 메인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 영화는 '재난' 이전 풀어내는 이야기가 성가실 정도로 많다. 인물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시국을 읊는 선택을 트집 잡고 싶지는 않지만 그저 실없는 농담과 재치 있는 척 하는 사회적 발언들만을 주저리 늘어놓는 초반 30분은 이 영화에서 사실상 쓸 데가 없다.
<싱크홀>은 재난보다 유머가 최우선 관심사인 영화처럼 느껴진다. 물론 재난을 다룬 모든 영화가 우울하고 축축 가라앉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마션>과 같은 반례가 있으니 말이다. 허나 <마션>과 <싱크홀>이 두는 포커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션>의 경우 신나는 낙천성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과 관객은 주인공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싱크홀>은 내내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만드는 데만 초점을 맞춰 싱크홀 밖의 '초상집 분위기'와 구조 작업들을 사실상 무의미한 헛수고처럼 휘발시켜버린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CG는 이제는 한국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느껴진다. 특히 건물들이 무너지는 장면에서의 가벼운 질감은 몰입을 방해한다. 시국을 겨냥한 듯한 은주 씨의 느닷없는 각성도 당황스럽다. 부실공사, 내집마련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인물들의 대사는 강박적으로 끼워넣은 요소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홀로 떨어진 이후부터는 영화가 최소한의 호흡도 무시한 채 신파 감성을 작정하고 분출한다. '위기의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해피엔드를 가장 강력하게 보증해 주는 듯 천편일률적이다. <싱크홀>은 결이 없고 맥락도 없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