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역사는 인간의 손으로 쓰여졌기에 그만큼 불완전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침묵의 친구>다. 침묵의 친구란 극중 등장하는 1832년산 은행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본작의 주인공은 그 1832년산 은행나무다. 당연하게도 영화의 주인공은 은행나무이기에 극중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본작의 주인공을 은행나무라 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세 인물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진행한다. 대학 최초의 여학생으로 아직 차별의 시선이 형형하게 살아있던 시기인 1908년에 외롭게 거했던 그레테, 사랑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남들 모두가 즐기는 대마초를 멀리하며 고독으로 침전하는 1972년의 대학생 남성 한스, 타국인 독일에서 외로이 신경과학자로 근무하는, 2020년 팬데믹으로 접촉마저 차단당한 홍콩 과학자 토니.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었지만 모두 기댈 곳이 필요한 인물들이었다. 은행나무는 조용히 그들의 기댈 곳이 되어준다.
우리는 세상의 역사는 인간들이 만든 거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대한 한 나무에게 한 인간은 찰나일 뿐이다. 어쩌면 나무는 인간이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못하는 것마저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무의식으로 벌인 행동마저도 자연은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다. 몇 장면이 있다. 먼저 토니. 동료들과 모인 저녁 식사에선 여유로워 보였던 그가 그 모든 식사 후 먹은 것들을 토해 낸다. 아마도 그는 그러한 자리를 불편해하는 자였을 터. 비틀거리다 우연히 다다른 나무 앞에서 그는 먹은 것들을 모조리 게워 내고, 그와 동시에 나무는 그가 토한 것들을 땅으로 흡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은 마치 <아바타 2>의 툴쿤의 시점 숏을 보는 듯한 시점 숏으로 표현된다. 토니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공원의 어느 지점인지, 내가 얼마나 여기서 비틀거리고 있었는지 이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 그 은행나무는 토니보다 더 토니의 당시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레테의 에피소드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자 그레테는 나무 아래서 담배를 처음으로 피워 본다. 그녀는 아마 이후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큰 의식 없이 벌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 곁의 나무는 그녀가 핀 담배 연기를 흡수한다. (그것은 현미경 장면으로 관객에게 보여진다) 마치 그레테 인생의 무의식이자 찰나와도 같은 순간마저, 한 곳에 우두커니 있는 나무(자연)는 모두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레테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레테의 어떤 순간들.
그 나무는 세 다른 인물들에게 힘을 전달해 준 것 같다. 홀로 있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을. 함께 있는 것과 팀플레이를 어려워하던 토니는 대학의 직원과 함께 식물의 생식이라는 융합이라는 것을 함께 기다린다. 식물을 싫어한다던 한스는 여자친구의 제라늄이 가진 잠재력을 보고 그것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며 행복을 느낀다. 그레테는 자신을 무시하던 교수들과 비슷한 연배이지만 자신을 존중해 주는, 교수가 아니라 동네 사진사이지만 그의 조수가 되어 새로운 기쁨을 얻는다. 세 인물은 분명히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온전히 그들만의 힘으로 이뤄낸 전진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침묵의 친구가 되어 준 은행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