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이나 <샤이닝>을 떠올리는 어떤 촬영들은 비록 오리지널리티가 없었을지언정 꽤나 괜찮았다. 천주교 이외의 종교가 혼합된 세계관에, 각 공간마다 미술적 역량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말하자면 본작의 유일한 볼만한 점이었다.
신부들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않는 유니아 수녀의 일견 아슬아슬한 태도를 보자마자, 수녀복을 입지 않은 '인간 유니아'의 모습이 단번에 예상 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수녀복을 입지 않은 인간 유니아의 환난'은 너무 뻔한 그림이다. 물론 본작이 구마보다 연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두 주인공의 '캐릭터라이징'은 정교하게 이루어졌는가? 그녀의 '눈치 보지 않는 성격'을 손쉽게 표현하려는 비속어 섞인 대사들의 반복은 나태하게만 느껴진다. 그녀가 왜 시니컬해졌는지 (본작에서 그 캐릭터를 계속해서 어필함에도)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은 그저 그녀의 '수난'을 표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는가? 유니아는 그저 버디 무비의 두 주인공 중 다소 시니컬하고 말 없는 인물이라는 스테레오타입형 인물처럼 보인다.
미카엘라 신부의 전사에는 제법 공을 들였지만 매우 비슷한 듯 보이는 <양들의 침묵> 속 클라리스 스탈링에 비해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문우진이라는 배우는 많은 노력을 한 듯 보이지만 감독이 아직 어린 그에게 너무 무거운 과제를 부여한 듯 느껴졌다. 전임자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기에. 무엇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그저 저렴한 자극만을 선사한다. 어떨 때는 코미디처럼 느껴질 만큼 과장되어 있었다. 바오로 신부라는 역할은 더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여성을 대하는 '어떤 이들'을 상징하는 인물로서만 기능하는 듯한 그가 본작에서 이리도 많은 분량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금기를 깨는 이야기는 물론 언제나 궁극의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관객을 납득시키기 위한 충분한 절차가 진행되지 못한 단순한 해금은 없느니만 못하다. 본작이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들의 '성별'일텐데, 본작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여성일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원칙적으로 수녀(여성)는 구마를 할 수 없지만 본작에선 하는' 것에 어떤 이유도 없다. 그저 주인공의 성별만 특정되면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헤픈 지지를 얻고자 위함인가? 그저 악마를 몸에 가둔다는 순간 하나를 위해 그 세계의 룰을 뒤집으면서까지 그들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한 것인가?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로도 실패했다.
상술했듯 본작이 '연대'에 초점을 더 두고 있지만서도, 영화의 거의 절반은 오컬트 장르의 구마 의식이라는 장르적인 서사를 (특히나 전작을) 충실히 따라가는데 그 마지막을 '파도 씬'으로 마무리하는 선택은 눈을 의심하게끔 했다. 문동은의 소꿉 구마놀이를 내내 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 마지막을 간편한 '감성팔이'로 끝내다니. 아예 톤을 뒤집어버리면서까지. 오컬트는 축축하면 망하는 거다. 그 이후, 3인조의 달리기 씬은 낮아진 텐션을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얄팍한 씬이며, 떨어지는 십자가를 막으려 달려가는 슬로우모션도 너무 우스꽝스러웠는데, 미카엘라의 깽깽이 장면은 본작의 '질척거림'의 극한이다. 에필로그의 강동원 등장 장면이 가장 큰 임팩트다. 본작은 전작을 넘지 못했고, 버금가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