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거기에 고난을 영화의 소재로 더한다면 그것은 언뜻 반칙에 가까운 행위일 수 있다. 거의 모든 인간은 그것을 보며 동정과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탄 소년>은 우선 그러한 설정을 충분하게 이용하는 영화다. 아이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지쳐 직접 만난 아버지는 그의 눈앞에서 기어이 그를 다시 버린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드라마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전거 탄 소년>은 비극을 주된 골자로 보여주는 여타의 영화들과는 달리, 미묘한 밝음과 미묘한 희망이 엿보인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수반되는 모티프가 있는데 바로 '어른이나 관객의 시선에선 보이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후의 걸작인 <ET>에서도 그러한 모티프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아이는 '어른들의 사정'을 자신의 눈높이에서 채 모두 파악할 수 없으며, 관객은 아이보다 먼 발치에서 어른들의 모든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자전거 탄 소년>이 특별한 까닭은 '어른보다 성숙한 아이'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엔딩은 무엇인가. 이제껏 소년이 달려간 곳에는 슬픔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갔었다. 그는 이제껏 슬픔으로 달려갔었다. 드디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로 달려가니 이제야 그는 기쁨으로 달려간다. 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