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Picnic

1994 · 이와이 슌지 · 일본
피크닉 포스터
72분 · 드라마 · 모험 · 15세 이상 · 출연 Chara, 아사노 타다노부, 橋爪浩一, 무사카 나오마사 · 음악 麗美 · 촬영 篠田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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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피난처는 동시에 묫자리다

꽃은 아름답다. 꽃들은 더 아름답다. 도로에 누워 있어도, 도열해 있는 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 꽃들이 차바퀴에 짓밟히는 순간은 안타깝다. 꽃이 도로에 누워 있던 것이 잘못이지 그것을 밟고 지나간 차는 잘못이 없다 말해도 틀리진 않겠으나, 그 꽃들의 짓밟힘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또 자연스러운 감정일 테다. 꽃들을 밟고 지나간 그 차에는 주인공 소녀와 그녀의 부모로 추정되는 남녀가 타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코코. 차 안의 모두가 목적지를 알지만 소녀 홀로 이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건물부터 사람들까지 온통 새하얀 모습으로 가득한 정신병원이다. 의연한 부부의 모습. 그들은 그곳에 딸을 '버리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제 원리를 미리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울지라도 밟힐 수밖에 없는, 땅에 버려져 있는 존재들.

<피크닉>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인물들의 처지를 체험하게 하는 연출로 가득하다. 화면은 관객에게 편안히 머무를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숏과 리버스 숏이 만드는 정석적인 리액션 숏이 담기는 법이 거의 없다. 논리적인 배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상실되어 있고, 그 자리에는 부자연스러우면서도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계속해서 예상치 못했던 구도의 숏들이 뒤따라 붙는다. 인물이 어디를 보고 있으며 그 시선의 끝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영화는 확인시켜 주지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정신병원은 사회와 대단히 격리되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담장 하나 밖으로는 곧바로 사회의 모습이 보이고, 병원의 담장 주변으로는 마땅한 보안 체계도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 명의 인원이 병원의 담을 넘어도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는다. 그곳은 엄격한 격리시설이나 엄격한 교정시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은 오히려 쓰레기장이라고 칭하는 것이 적절한 명명일 것이다. 담아 두려는 의지가 없는 곳, 다만 갖다 버리기만 하는 곳. 그러면서도 제 발로 돌아온 그들을 잡아다가는 강제 결박과 강제 투약을 행한다. 병원의 구색을 맞추겠다는 듯이. 언제부터 본분을 다했었다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룰이다. 담을 넘어가면 혼난다고 하고, 담만 안 넘으면 된다고 한다. 사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애초에 병원 밖으로 나간 것이 문제지, 담 위에 서 있건 땅 위에 서 있건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선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이쪽에 속한 자도 아니고 저쪽에 속한 자도 아닌, 담이라는 그 사이 경계선에 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땅의 시선에서 본다면 그들은 사실상 공중을 떠다니는 존재다.

담 위에 오른 셋은 저마다 땅(사회)에서 밀려난 이력을 지녔다. 코코는 요샛말로 멘헤라스러운 인물처럼 보인다. 그것이 정신병원에 들어올 정도의 병증인지는 갸웃하게 되나, 하여튼 정신이 온전치는 않아 보인다. 자신을 신의 자식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고 굳게 믿는 인물. 그녀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사토루는 병실에서 그녀를 떠올리며 자위를 한다. 타인과 관계 맺는 일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인물처럼 그려지는 그. 츠무지는 그 둘에 비해선 다소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환상을 본다. 기괴한 형상으로 등장하는 자신의 옛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고 츠무지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 선생님을 죽였던 츠무지. 뒤에 가서는 코코 역시 쌍둥이 동생 키키를 죽였음을 고백한다.

담과 땅, 그곳에 사다리를 놓아 유일하게 이어 줬던 존재인 목사로 인해 신앙을 가지게 된 츠무지는 지구의 최후를 보러 가고 싶어 한다. 그것을 이뤄 주기 위해 떠나는 셋의 여정은 다분히 환상적이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담을 길로 하여,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공간까지 향한다. 그들을 따라온 경찰의 총을 빼앗기도 하는 등, 그들에게 거칠 것은 없어 보인다. 땅에서라면 결박당하고 투약당했을 자들이 담 위에서는 무장까지 한다. 지상의 법은 이 좁은 길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이 좁은 길은 경계선을 인지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세계다.

그러다 일순간 사고가 난다. 담 위에서 뛰어가던 사토루가 헛디뎌 땅의 돌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하는 것이다. 셋 중 가장 순종적인 인물이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스스로 헛디딘 사고였기에 비극이었다. 이제껏 내일이 없는 자들의, 그렇지만 낙관적인 여정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이 순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같은 말을 바꿔 말하겠다. 우리는 그들의 여정이 끝내 희극으로 완성될 거라 예측하지는 않았다.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그 예측은 기어이 스포일러로 바뀐다.

코코는 다시 교회로 오지만, 그녀의 아이들을 향한 호의는 이전과 달리 냉랭한 결과로 끝이 난다. 땅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 같았던 유일한 창구인 교회 앞에서도 이제는 그 희망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젠 코코와 츠무지 모두 세상에 대한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 않게 되었을 테다. 선생님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츠무지에게 코코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을 마저 고백하고, 둘은 지구 최후의 키스를 한다. 그리고 당도한 부둣가, 혹은 지구의 끝. 등대에 올라가 생각해 본다. 지옥은 어떨까, 태양보다 뜨거울까 하며. 세상이 멸망하기를 기도해 왔던 츠무지는 태양을 총으로 쏘면 폭발해 세상이 멸망할까 궁금해 하지만,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쏜 총알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바깥을 겨눈 총은 언제나 빗나간다. 이 세계에서 '끝'은 '바깥에서 오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멸망시킬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정말로 믿었던 자가 그 총구를 돌려 자신에게 겨누는 것.

코코는 츠무지의 총을 가지고 그 하나뿐인 방법을 실행하고, 수백 개의 까마귀털이 사방으로 날린다. 도로에 누워 짓밟히던 꽃들이 있었고, 등대 위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깃털이 있다. 땅에 닿는 것은 밟히고, 코코는 끝내 땅에 닿지 않았다. 자신이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던 말은 그녀에게만은 지켜졌다. 그녀의 세상은 그녀와 함께 끝났으니까. 정작 세상은 멀쩡한데.

그런데 이 죽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잘한 일이라 손뼉 칠 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말릴 수도 없다. 그런데도 저 깃털이 흩날리는 순간이 왜 이토록 아름다운지, 그리고 왜 이토록 후련한지를 나는 부정하지 못한다. 코코의 손끝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체념한 자의 손이 아니라 무언가를 정말로 이루려는 자의 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츠무지를 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어질 만큼 그 아이는 순수했다. 남은 츠무지는 총알이 없는 총을 공연히 사방으로 쏘아 보기만 한다. 그는 여전히 담 위에 있고, 그를 데리고 내려올 사다리는 이제 없다. 츠무지는 영원히 경계선에 놓인 자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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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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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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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麗美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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