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시대Resurrection

2025 · 비간 · 중국, 프랑스
광야시대 포스터
156분 · SF · 드라마 · 15세 이상 · 출연 이양첸시, 서기, 조우정, 이경희 · 음악 Anthony Gonzalez · 촬영 Dong Jin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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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래의 광야시대. 꿈꾸지 않는 자들은 영생할 수 있다는 비밀을 발견한 인류는, 비밀리에 계속 꿈을 꾸면서 역사에 혼동을 가져오고 시간의 오류를 만드는 ‘판타스머’들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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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자들이 만든 불멸의 것들, 예술!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멸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히 살지 못하고 언젠가는 사라지기에, 시간이 지나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영원히 살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동경을 인간은 오래전부터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기에,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시대가 찾아온다면 그 시대는 어쩌면 예술이라는 분야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일 것이다. "영화는 가까운 과거의 고고학이다."라는 유명한 말은 과거라는 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인간들이 수 백 년 수 천년 동안 세계에 살아있다면, 예술로 과거를 기록할 필요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광야시대>의 시대는 그런 시대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된 시대. 다시 말해 예술이 필요 없어진 시대. 여전히 꿈을 꾸려는 사람들은 세계를 망가뜨리는 자들로 간주되어 '교육'을 당한다. 그 '판타스머'가 꾸는 꿈들은 마치 영화의 여러 면모들을 떠오르게 한다. 아니 사실은 빅 아더가 판타스터를 찾기까지의 여정들에서도, 마치 초기 영화의 모습들을 보는 것 같은 공간 디자인들이 엿보인다. 소리는 없고 코미디의 감성이 깃든 초기 무성영화의 형태를 띤 오프닝부터, 빅 아더가 판타스머를 쫓는 공간들에선 독일 표현주의 시기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예술(혹은 영화)을 처치하려 향한 빅 아더의 행적이 또 하나의 영화적인 것들이었다는 아이러니.

그렇게 당도한 판타스머는 죽음의 눈앞에 와 있다. 마지막으로 꿈꿀 시간을 허락받아 꾸는 4가지의 꿈은 영화사를 응축한 듯한 4가지의 서로 다르게 디자인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첫 번째 꿈은 필름느와르, 어쩌면 프렌치느와르를 연상케 하는 음울하고도 축축한 비주얼 속 잔인하고도 처절한 범죄 이야기다.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떠올리게도 하고, 혹은 멜빌의 여러 작품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두 번째 꿈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데르수 우잘라>나 <라쇼몽>을 떠올리게도 하는, 눈과 사찰이라는 공간 디자인 속 '쓴 맛의 악마'와 벌이는 철학적 이야기다. 세 번째 꿈은 <차이나타운>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속 버디 무비 같은 설정과 유머가 깃든 이야기다. 마지막 네 번째 꿈은 비간 감독 자신의 인장과도 같은 디자인으로, 가로등 빛이 감싸는 어둠에서 유장하게 흘러가는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범죄/로맨스 이야기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독해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고, 에피소드 간의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도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옴니버스 영화에 가깝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본작은 옴니버스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그 넷이 판타스머의 꿈으로 엮여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넷의 이야기는 '영화'라는 하나의 테마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광야시대>의 네 에피소드는 영화의 수많은 면모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여타의 영화들이 사과의 한 부분을 주목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광야시대>는 한 편의 영화 안에 사과를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왼쪽이나 오른쪽에서도 보는 시선을 모두 담아놓은 영화다.

굉장히 다가가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광야시대>가 말하는 것은 선명하고 간결하다. 영화의 엔딩은 오래된 극장 안에 광원처럼 빛나는 어떤 존재들이 모여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다. 그리곤 영화가 '끝'이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들은 아마도 필멸한 존재인 인간들이자 판타스머들일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이 아름다운 예술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임을 비간은 말한다. 더 이상 꿈꾸는 시대가 되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꿈꾸는 사람이고픈 예술가의 진심은 <광야시대>의 이 살벌한 난도 속에서도 간명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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