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 · 리처드 링클레이터 · 그리스, 미국
비포 미드나잇 포스터
109분 · 로맨스 · 드라마 · 18세 이상 ·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Seamus Davey-Fitzpatrick, Jennifer Prior · 음악 Graham Reynolds · 촬영 Χρήστος Βουδούρη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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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비엔나행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고 9년 전 파리에서 재회한 제시와 셀린느. 이제 40대에 접어든 셀린느와 제시는 따사로운 석양빛이 인상적인 그리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펠로폰네소스에 머물고 있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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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0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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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마음이,

원을 한 바퀴 돌아 이기심이라는 얼굴로 도착한다.

중년의 제시가 한 아이와 나란히 걷는다. 아이는 그의 아들이고, 둘은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곳은 그리스, 아이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쯤에서 이 시리즈의 팬들은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제시가 <비포 선셋>의 마지막에서 끝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결국 셀린을 선택했음을. 링클레이터는 팬들의 기대를 선물로 되돌려준다. 아들과 이별하고 공항 밖으로 나온 제시를 기다리는 인물은,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너무도 익숙한 그녀, 셀린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탄 차의 뒷좌석에는 사랑스러운 쌍둥이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두 사람이 원하던 이상에 골인한, 성공한 삶인가. 언뜻 그래 보인다. 그러나 차에 오른 순간부터 그들의 대화는 '이상'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독히 현실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마냥 웃지도 않고, 마냥 싸우지도 않는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감정이 쌓이고 언쟁과 갈등이 번지는, 우리 여느 부부의 삶과 다르지 않은 시간들이다. 이 '언쟁의 서사'를 떠받치는 것은 롱테이크다. 화려한 연출은 아니다. 그러나 비포 시리즈의 롱테이크란 컷으로 대변되는 가장(假裝)을 걷어낸, 삶의 여백과 밑낯을 숨기지 않으려는 진실한 태도다. 여기서 한 가지 성질을 짚어 두자. 제시와 셀린은 언제나 서로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사람들이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첫날 밤에도, <비포 선셋>의 재회에서도, 두 사람의 말은 늘 상대를 향해 기울어 있었다. 그 기울어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것이 <비포 미드나잇>이 응시하는 진짜 이야기다.

<비포 선라이즈>는 온전히 둘만의 이야기였다. <비포 선셋> 역시 주변 인물들은 화면으로도 대사로도 최소한으로만 등장하며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달라진 가장 큰 지점은, 두 사람에게 수많은 관계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큰 싸움으로 번지기 직전, 잠에서 깬 딸들 덕분에 분위기가 풀린다. 어렵게 시작된 섹스는 아들 헨리의 전화로 중단된다. 이제 그들은 싸움도, 사랑도 온전히 자신들만의 시간 안에서 겪지 못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젊은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흐뭇하게 듣고 있는 두 사람. 18년 전 그들은 낭만적 사랑의 당사자였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청자다.

관계가 늘어난 만큼,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의 여러 양태를 응시한다. 자식을 향한 헌신으로서의 아가페적 사랑이 있고,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케 하는 낭만적 사랑이 있으며,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의, 현실적이면서도 간간이 낭만이 엿보이는 사랑이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나 곁에 없는 상대를 그리워하는 사랑도 있다. 그중 제시와 셀린의 사랑, 40대의 사랑은 공존에 가깝다. 서로가 팽팽하다. 분명히 사랑하지만, 분명히 증오한다. 애증이라는 단어. 두 사람은 잡담을 생경하게 느끼기도 한다. 전작들에서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이다. 그만큼 이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뜻이고, 매 순간을 '쓸 데 있는' 시간으로 채워야 하는 자리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가장 큰 싸움은, 뜻밖에도 다정함에서 시작된다. 미국으로 돌아간 헨리가 전화를 걸어 온다. 그런데 그 전화는 제시가 아니라 셀린에게 걸려 온 것이다. 헨리의 애정의 무게는 제시가 아니라 셀린에게 기울어져 있는가. 헨리가 제시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셀린에겐 털어놓았다던 초반의 언급과 같이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그의 연인과 더 가깝고, 제시는 곁에서 통화를 들으며 왜 그 전화가 자신에게 오지 않는지를,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일지를 생각하며 속으로 썩인다. 물론 셀린이 헨리를 제 자식처럼 살갑게 챙기는 그 마음에는 한 점의 가식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순도 높은 애정은, 제 친아들 곁에서마저 밀려난 듯한 제시를 조용히 지운다. 왜 나에게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느냐는 사소한 물음이, 끝내 로맨틱했어야 하는 그 밤을 통째로 망치는 전쟁으로 번진다.

원을 하나 그려 보자. 한 점에서 출발한 선이 끝내 반대편에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곡선을. 이타심도 그렇게 움직인다. 상대를 향한 배려가 쌓이고 쌓여 극단에 이르면, 그 '극단적 이타심'은 어느새 '이기심'과 얼굴을 구분할 수 없는 지점에 도착한다. 나는 오직 너를 위한 마음이었다 해도, 너는 그것을 나를 지우는 이기심으로 받아들인다. 상술했던 언급을 다시 떠올리자. 제시와 셀린의 대화는 언제나 이타적이었다. 다만 세월과 함께 관계가 깊어진 만큼, 그 이타심마저 극단까지 밀려간 것이다. 이 싸움은 두 사람이 서로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이제 과거마저 곡해하기 시작한다. 그 곡해는 종종 자신의 열등감에서 자라난다. 저마다 자신이 더 많이 희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 말은 둘 다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있음을 굳이 소리 내어 증명하려는 순간, 그 증명은 역설적이게도 관계에 이미 금이 갔음을 고백하는 방식이 되고 만다.

가장 현실적인,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던 <비포 미드나잇>. 그런데 그 엔딩은 트릴로지를 통틀어 가장 양식적이고, 가장 뜬금없으며, 그러면서도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매듭지어진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셀린은 방을 나가 호텔의 바닷가 노천 식당에 홀로 앉는다. 그녀를 찾아온 제시는 난데없이,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를 연기하기 시작한다. 82세가 된 셀린이 남은 생을 위해 지금의 자신에게 부친 편지를 대신 전하러 왔다는 것이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그는 읽는다. 내 생애 최고의 밤은 (그들이 있는 바로 거기) 펠로폰네소스 남쪽 어느 하룻밤이었으니 부디 놓치지 말라고. 셀린은 시큰둥하게 받아친다. 그 유치한 장난 좀 그만두라고. 그러나 티격태격 실랑이 끝에,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스스로 그 허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시간여행 기계라는 건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거냐고 되물으면서. 영화는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보낼 밤을 이젠 더이상 우려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듯 조용히 뒤로 물러나고, 동시에 그들과 같이 사랑과 증오로 이루어져 있는 그들 곁의 여러 부부들의 모습을 함께 비추며 막을 내린다.

여기서 링클레이터는 가장 인위적인 장치로 가장 진실한 화해를 빚어낸다. 제시가 지어낸 편지도, 시간여행자라는 설정도 모두 거짓이다. 그러나 그 거짓 연극에 셀린이 발을 들이는 순간, 두 사람은 <비포 선라이즈>의 그 장난스럽고 낭만적인 화법으로 되돌아간다. 먼 미래를 빌려 옛 과거를, 빈에서의 첫날 밤을 불러내고, 그것으로 무너지려는 현재를 붙드는 일. 이 엔딩 역시 하나의 원이다. 그리고 셀린이 제시의 허구에 기꺼이 장단을 맞춰 주는 그 몸짓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단적인 배려'의 형태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에는, 그 '극단적인 배려'가 상대를 찌르는 대신 상대를 끌어안는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3부작」 지도›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5편›
이 배우를 더 보고 싶어2명›
소재
여름방학이 배경인 영화3편›
그리스가 배경인 영화4편›
가족 여행이 나오는 영화4편›
관계가 어긋나는 영화12편›
호텔 방이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13편›
휴가가 배경인 영화16편›
여름이 배경인 영화가 좋았어17편›
공항이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19편›
자전적 요소가 있는 영화가 궁금해20편›
쌍둥이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33편›
작가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46편›
여행하는 영화가 좋았어74편›
연애를 다룬 영화가 궁금해80편›
부부 이야기가 좋았어97편›
사랑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149편›
예술가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179편›
멜로·로맨스를 더 보고 싶어211편›
리뷰
리뷰에서 함께 이야기한 영화2편›
음악·촬영
촬영 · Χρήστος Βουδούρης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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