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핀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볼링핀은 다시 일어나도 다시 쓰러진다.
영화의 주인공 '듀드 레보스키'는 단순히 이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그저 지나가는 한 캐릭터'로만 소비될 인물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수많은 논란과 기약없는 학살을 낳았던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패배로 끝난 후,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부품처럼 소비되었던 미국의 청춘들은
갈곳을 잃은 채 사회로 던져졌고 거리에 나뒹굴었다.
듀드와 그의 친구 월터는 그런 미국의 청춘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듀드는 별다른 직업 없이 무위도식하며 볼링으로 하루를 보내는 인물이며, 월터는 세상을 보며 참전을 한탄하는 동시에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아마도 그 당시 참전했던 미 청춘들의 형태를 저 두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세상을 경험하기도 전에 핏발 서린 전장으로 내몰렸을 수많은 '듀드'들의 전쟁이 끝난 직후 모습은 아마도 '몸만 자란 아이'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재미삼아 붙인 설정이 아니었을,) 듀드와 동명이인인
백만장자 '제프 레보스키'가 듀드에게 직장이나 구하라며 잔소리하는 모습에선 그 시절 청춘들에게 책임없는 조언을 날렸을 기득권층들의 이미지가 절로 그려진다.
포르노 사업가 '재키 트리혼'의 추악한 면을 자신을 체포한 이들에게 폭로함에도 "트리혼 씨는 사회 기여가 크고 당신은 아무 기여도 안해." 라며 되받아치는 보안관의 말에서 미 청춘들의 사회적 지위가 어땠을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위대한 레보스키>는 코엔 형제가 작정하면 이 정도로 마이너한 감성의 코미디물을 만들 수가 있구나, 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영화다. 동시에, 그 시선과 터치에서 오직 코엔만이 할 수 있는 결과물임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다. 싸이키델릭한 환각적 연출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끝내 그들은 밑바닥 삶을 벗어나지 못하리란 절망적인 확신에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다시 세워지는 볼링핀처럼, 고난이 닥쳐도 여전히 앞으로도 극복해 내기를 코엔과 나 또한 바라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