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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 경축식.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현장에서 영부인이 저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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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위험하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관해서는 그 제한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술의 풍요로움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선전과 선동을 부추기는 영화는 좋은 예술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이것이 옳은 이야기인지 그른 이야기인지를 놓고 국민투표에 부치는 식의 당위의 문제로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결과물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영화인가' 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를 가지고서 사회와 정치 분야로 확장된 논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며, 답이 없는 소모성의 정쟁으로 지속될 뿐이다.
하지만 우선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 중 가장 큰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만 같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의 감상으로는 그렇다. 이 영화는 내내 '중정 위의 권력'을 향하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의견에는 나는 동의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내가 이해한 그 지점만을 가지고 이 영화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하는지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에 있다. <암살자(들)>은 '진실'을 쫓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시종 청승맞은 태도로 관객에게 호소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는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폭풍 속에서도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라며 어필하는 듯 하지만,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에서는 매우 감정적인 카메라와 편집, 액션에 기대어 있다. 그것은 괴리다.
물론 영화는 시작부터 '사건은 실제 사건에 기초했지만, 등장인물이나 구체적 사건은 각색을 했다'는 말을 우선 내세운다. (당연히 이것은 영화 공개 이후의 예상되는 논쟁을 방어하고자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의 이야기는 역사가 선명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어떤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시간들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것이 진실이다'는 뉘앙스로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감독의 의도다. 등장인물 누군가 기억 속의 재구성이 아니었다면 사건의 순간을 우리는 온전히 보았다. 사건이 일어나는 이 순간은 한 치의 가장 없는 팩트라는 뉘앙스로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사건 이후의 시간들도 우리는 이것이 진실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신뢰감을 가지고서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가 그렇게 의도했는데, 영화의 시작 문구를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그냥 픽션으로만 봐라'는 식으로 무마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태도다. 어쩌면, 이 영화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말을 더욱 선명하고 더욱 치밀하게 했다면 차라리 나는 더 높게 평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빌런들의 캐릭터라이징도 치밀하지 못하다. 김학수, 김상필, 최경두 모두 전형적인 빌런의 역할으로 일관할 뿐이다. 잠깐 스친 김학수는 문자 그대로 '비열하게 웃는 악당'의 프로토타입일 뿐이고, 김상필은 폭력적인 행동을 앞세우며 그르렁대는 형태의 빌런 역할일 뿐이다. 본작은 우리에게 말한다. 분노하고, 그 시대를 혐오하라고. 물론 엄혹한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그것을 알 만큼 아는 세상이다. 더이상 전파를 통제하고 모든 언론을 검열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2026년의 작품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강요를 한다. 분노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닌 것이라고. 영화는 제시하는 역할이다. 분노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야 할 몫이다. 이 영화는 관객보다 먼저 잔뜩 분노해 있다. <암살자(들)>은 우리도 아직 잘 모르겠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와 동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을 결론내렸으니 따라오라는 영화처럼 보인다. <암살자(들)>은 전진하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와 동행하는 영화가 아니며, 우리를 부추기는 영화다.
이쯤에서 이창동의 영화를 떠올리자. 소위 편가르기 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인 이창동이 좌우 중 어느 편에 서 있는가는 더 탐구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박하사탕>같은 영화를 본다면,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그러한 문제는 적극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창동의 가장 놀라운 점은, 히스테리컬한 인상을 받을 만큼 편향을 피하려는 노력을 영화 안에서 벌이기 때문이다. 이창동은 영화를 선전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두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이 <암살자(들)> 간 톤은 너무나도 다르다. 나는 이제 더는, 감독 허진호가 기대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