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느꼈던 것은 역시 1부보단 2부가 좋지만
1부 역시 굉장히 좋았고 굉장히 잘 만든 에피소드라는 것을 느꼈다.
영화의 주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1부는 혼란이고 2부는 낭만이다. 반환을 앞둔 1994년 홍콩인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순간들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1부는 다시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표준어 광둥어 영어로 대화하는 이들, 금발 가발을 쓰고 서양인과 사랑을 나누는 홍콩의 여인, 퇴폐적인 뒷골목. 그 시절 홍콩은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웠다.
처음 볼 땐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1부 도중에 양조위와 왕페이가 스치듯 등장했었구나, 몰랐네.
2부는 낭만이다. 사실 2부는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페이의 무단침입(?), 무심한 663, 비누에게 말을 건네는 663(;;).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들이 대사를 할 때는 가장 촌스럽고 인물들이 프레임 안에 조용히 담겨 있을 땐 가장 세련된 영화라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는 낡지만 이미지는 낡지 않는다고 그랬던가.
페이의 꿈 이후 곧이어 붙는 페이가 663의 집을 찾아가는 시퀀스들은 663의 마음에 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남자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것의 은유로 보여진다. 남자의 입 속으로 들어가던 블랙커피가 여자의 입 속으로 들어가듯.
여자는 남자의 집을 청소하고(남자와 전 애인과의 흔적을 지우고 ) 자신의 물건으로 바꿔놓는다.
남자가 집의 변화를 눈치채는 순간부터는, 남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시점이라고 보여진다.
남자는 여자가 옷장에 걸어두었던 셔츠와 양말을 신는다.
그렇기에 여자의 행동이 주거침입이라 투정하는 목소리는, 사실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 대한 심드렁한 시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왕가위의 다른 걸작들과 다르게 이 영화에선 감독이 많이 힘을 뺀 느낌이 절로 들었다. 또한 <아비정전>, <동사서독>, <화양연화>와 비교했을 때 이성적으론 확실히 만듦새가 한 단계 떨어진다.
최근 다시 봤던 <춘광사설>과 비교했을 때도 영화의 완성도에 있어선 이 영화가 제법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선 왕가위의 다른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무언가의 공기가 나에겐 감지된다. 영화를 평가할 땐 제법 이성적으로 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에선 내 감정을 따라가고 싶다.
2021.3.4 수원 cgv 4k laser 2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