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상 최고의 장난꾸러기는 로버트 알트만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맥케이브>의 장르는 분명 서부극이다. 허나 알트만은 서부극의 골조를 기대한 우리를 철저히 조롱한다.
주인공 맥케이브는 시종 느릿하고, 허리춤에 총을 들고 다니기는 커녕 누굴 죽여본 적도 없는 듯한 헐렁함이 풍기며, 서부극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아우라와 카리스마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폭력의 판타지는 없다. 킬러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니는 주인공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안쓰럽고 멋 없는 주인공이 있었던가.
전통적인 서부극에서 철저하게 극의 부속품으로 사용되었던 매음굴과 여성이라는 소재가, <맥케이브>에선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으로 복무한다. 보안관, 협객, 무법자, 인디언과 같이 서부극의 클리셰적인 캐릭터들은 자취를 감췄다. 언뜻 빌런처럼 보이는 몇몇 "협상가"들은 맥없고 소리없이 사라진다.
두 주인공들의 서사가 무르익을 무렵엔 어김없이 틈입하는 조연들의 수다.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다. 둘은 그저 이 수많은 인간들 중에 있었을 뿐이다. 그 서부개척 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몽상가들 중의 두명일 뿐, 영화는 인물에 집중하지 않고 시대와 공간에 집중한다.
축축하고 뿌연 색감, 따뜻하고 건조한 질감에 더해지는 포크 감성의 음악은 역설적으로 이 이야기를 미끄러지듯 냉소한다. 다리에 총을 맞고 절뚝이는 맥케이브엔 관심 없고, 불 붙은 교회에만 관심있는 마을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본주의와 속물 근성으로 가득찬 불완전한 공동체의 아스라한 결말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