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Hope

2026 · 나홍진 · 한국
호프 포스터
156분 · SF · 미스터리 · 액션 · 15세 이상 · 출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 음악 마이클 아벨스 · 촬영 홍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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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묘사거친 대사공포 요소외계 생명체 해부확인된 것만 표시됩니다. 없다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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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해 줄 인력들은 산불을 끄러 갔고, 이젠 통신도 두절됐다. 호포 출장소의 범석과 성애는 노인들뿐인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놈을 쫓아서 산으로 향했던 청년들과 성기는 되려 놈들의 사냥감이 되어 버린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별점과 글 보기 · 9,190자
★★★★·4.03.0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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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괴이하고 괴팍하고 괴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 지지를 보내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 모두, 이 말에는 공감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클리셰가 없다'는 말은 대개 클리셰를 제거한 경우에 붙는 평가다. 그러나 이 영화는 클리셰를 비틀며 조롱하다시피 한다. 재난 앞에서 모두가 무력하지만 누구 하나 엉엉 우는 사람은 없고, 수의사는 외계인의 비밀을 밝혀내지도 못한 채 그저 폭력에 가까운 행위만을 일삼고, 저격을 해 외계인을 잡았다는 양배의 실력은 끝끝내 '상황을 뒤집을 한 방'으로 등장하지 않고, 그저 이 작은 마을의 문제가 아닌 어쩌면 전 지구적인 문제임에도 정부의 존재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가장 신경을 긁는 면장 조카는 이후 어떤 등장도 없이 그저 그 순간 신경을 긁는 장치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제시되지 않고, 성기 일행 중 한 명도 '브레인' 역할은 없다.

그런데 이 조롱은 영화가 시작하는 첫 호흡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산등성이를 훑으며 우아하고도 차분한 도입을 보여주려나 생각하던 차, 그 뒤편의 마을을 비춰주는 동시에 지상으로 급작스레 내려온다. 관객에게 익숙했던 그 우아한 템포는 몇 초 만에 차량의 속도감으로 휴지조각이 된다. 대신, 로우앵글과 광각으로 위태롭게 왜곡된 영상 안에 사건 하나가 공격적으로 던져진다. 시간적으로 최소한의 완충장치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절대적으로 장르영화적인 시작이다.

나는 대개 어떤 영화를 볼 때 그 영화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적혀 있었는지 염두에 두고 보는 편이다. 특히 발단과 전개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할당되었는지를 눈여겨본다. 그 기준에서 <호프>는 기이하다. 도입의 완충을 몇 초 만에 찢어버리며 곧장 본론으로 뛰어들면서도, 정작 괴물의 실체는 러닝타임이 정확히 한 시간에 이르러서야 눈앞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순은, 잠시 뒤에 이야기할 범석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풀린다.

이 영화의 세계는 그 질감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슬아슬한 신뢰의 세계, 이상한 분노의 시기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고, 공간은 비무장지대의 근방이다. 북쪽의 침투가 밤낮없다는 팻말이 도로에 걸려 있다. 경찰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되려 '누가 듣더라도 허풍 같은' 해술이 아저씨가 극중 가장 신뢰받는 인물처럼 보인다. 경찰마저 '양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기도 한다. 의사는 이상한 승부욕에 휩싸여 분노를 쏟아내며 죽은 '바미기르'를 잔인하게 해부한다. 등장인물들은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기가 닥쳤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서로를 신뢰한다.

동시에 매우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호포리 공간은 대략 80년대 사회의 모습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재현이라고 하기엔 건물이나 간판 등의 형태가 세월의 흔적 없이 지나치게 매끈하다. 카메라와 인물의 동선은 또 어떤가. FPS 게임을 3인칭 모드로 설정해 스토리모드를 진행하는 듯, 무언가에 필연적으로 이끌리는 형태로 무언가가 일어난 공간을 '진입'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간첩신고는 113'과 같은 팻말이 도로에 달려 있고, '주문식단제 실시로 식생활 개선하자'라는, 시점을 짐작하게 하는 팻말도 눈에 띄지만, '공식적인 설정'을 위한 그러한 '숙제'를 차치한다면 이 세계는 미묘한 무국적성이 흐른다. 이 시기의 어느 아저씨가 감탄사로 'holy shit!'을 외칠 수 있었겠는가? 쉽게 말해 80년대 스킨을 두른 가상세계 같다.

그리고 이 기이한 세계를 우리에게 안내하는 눈이 바로 고범석이다. 영화의 주인공 고범석은 경찰관, 이곳 호포항의 출장소 소장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신망을 받을 위치. 그러나 그는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니, 그 자체가 그럴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6촌 관계라는 고성기와 그의 동료들에게 거의 조롱을 받으며 속아넘어가고, 두려움을 간신히 이겨내고 침투해 쏜 총은 황당하게도 동료 '경식'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아군도 식별을 하지 못한 주제에 왜 하필이면 거기 있었냐고 투정만을 한다. 사고를 쳤지만 자신이 경찰이고 가해자기에 경찰서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

그리고 그는 가장 중요하게도, 괴물을 보지 못한다. 이 세계의 가장 큰 위협을 남들보다 한참 늦게 되어서야 두 눈으로 보게 된다는 말이다. 괴물이 옆에 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조용히 할 것을 강조하지만, 전쟁을 경험했을 노인 일행은 "뭐하는 거야! 거기 없어! 급해 죽겠는데 뭐해! 그러다 뒤져!" 라는 말과 함께 괴물이 있는 정반대의 진짜 위치를 가리킨다. 소장인 범석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총기를 가득 트럭에 담은 그들은 아직도 괴물을 보지 못했다는 범석을 "저 얼빵한 놈, 뭐 하고 다닌 거야?"하며 비웃는다. 이후 트럭에서 내린 범석은 먼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맞는다. 그들은 빨리 가라며 범석에게 소리치지만 범석은 왜 나한테 총을 쏘냐며 어이없어한다. 그들은 저 멀리서 괴물과 상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범석의 눈에는 그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범석을 향해 총을 쏜 이유가 곧 드러난다. 범석의 바로 뒤에 괴물이 있었던 것. 그들은 모두 괴물의 형상을 봤지만, 범석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왜 자신에게 총을 쏘는지 그 '이해할 수 없음'에만 사로잡혀 괴물을 보지 못했다. 대낮에 벌어지는 일이고, 분명히 괴물의 흔적을 충실히 따라가며, 모두가 괴물의 모습을 보지만, 범석은 괴물을 쉽사리 발견하지 못한다. 드디어 눈앞에 괴물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가까이 온 상황에서도, '덕기'를 붙잡고 있는 괴물인데 어떻게 할까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영화에서 괴물이 러닝타임에 정확히 1시간이 되는 지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의 눈앞에, 범석의 눈앞에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는 눈 뜬 장님인 범석과 동기화된 채 그를 따라가는 것이다.

범석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엄혹했던 시기 무능했던 누군가들의 초상으로 읽히며,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으며, 또한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속 주인공 '레이 페리어'와 같은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언뜻 전문가의 껍데기를 하고 있지만, 초월적인 재난 앞에서 그의 능력이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하며, 주인공이기에 끝까지 생존하기는 하지만 그의 생존은 그의 능력에 의함이 아니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색하고 어설픈 모습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인물.

범석의 이 무능은 그러나 한 개인의 결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반복'의 첫 사례처럼 보인다. <호프>의 이야기는 끝없는 '희망의 무력화'다. 이야기의 처음, 우리는 '경찰'인 범석이 소가 난도질당해 동네에 죽어 있는 이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려 온 희망의 존재일까 생각하고, 그가 미지의 존재를 물리쳐 줄 수 있는 인물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이 전 지구적인 위기를 감당할 만한 그릇은 영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게 된다. 그 다음 희망의 화신처럼 등장하는 인물은 임 순경이다. 대단히 장르적인 터치 안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호쾌한 총격으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인물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그 잠깐의 카리스마 이후 그녀의 모습은 시종 시끄럽고 침착하지 못하며 간신히 제정신을 붙들기 위해 애쓰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유난히 그녀에게만 할당된 양식적이고 연극적인 형태의 대사들이 그렇다. 지나치게 도회적인 외모가 아니면서도 대단한 '허우대'를 가지고 있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쉬운 발성이나 표정 같은 연기적 '스킬'을 가진 정호연이라는 배우는 그러한 까닭에 이 캐릭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2부, 즉 성기의 시점으로 넘어간 뒤부터는 성기가 진정한 영웅이자 희망인가? 1부, 즉 괴물이 첫 등장하기까지 간헐적으로 짧게 등장하는 성기의 장면들은 성기가 진정한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범석에 비해 곁에 일행과 함께이기도 하며, 범석보다 더 체계적으로 올바른 경로로 향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희망의 화신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신이 예상치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어설프게 그들을 공격하려는 동료에 의해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넘긴다. 거듭되는 반격은 처참히 짓밟히면서 말이다.

그를 구원해 주는 듯한 어촌계 사람들이 희망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백마를 타고 당도한 '현호'는 상반신이 뜯어진 채 끔찍하게 사망하고, 나머지 인물들도 성기 일행과 마찬가지로 힘없이 스러진다. 성기의 용맹으로 어찌어찌 위기를 극복한 것인가 숨을 돌리려는 찰나 성기는 다분히 의도적인 듯한 양배의 운전으로 리타이어되고, 쿠얼의 함선이 침몰하며 생겨난 폭발로 인해 다시금 전력으로 대피해야 하면서 임 순경과 범석은 대화를 나눈다. 임 순경은 자신의 '계획대로' 요새를 만드는 등의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범석은 (이 상황 앞에서) 나도 모르겠다고, 그냥 마음이 이상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마지막까지 <호프>의 어떤 인간도 희망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되려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존재는 외계인들처럼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자막까지 달아서' 외계인들에게 대사를 할당한다. 희망을 말하는 그들의 심경을 전달하려는 기능적인 이유인 것도 있겠지만, 이것은 그들의 존재를 지금까지 인간 시선의 맥락으로서만 받아들여져 왔던 '재앙'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과 동등한 위상으로 놓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단지 인간과 조금 다르게 생긴, 그렇지만 우리와 비슷하게 사회가 있고 가족이 있는 존재.

쿠키영상까지 다 보고 나면 인간들 중 사실상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물은 성기 한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그마저도 앞으로 있을 이야기에서 희망의 존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기는 극중의 인물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분노를 맘껏 표출하고 자신의 상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처음으로 온 경찰도 소총으로 무장한 순경도 백마 탄 존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성기는 유일하게 순수한 자신의 직감과 자신의 분노만을 따랐다. 물렁한 계획, 물렁한 생각들로 헤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를 꽉 깨물고 독기로 살아가는 인물은 성기가 유일했다.

감독의 전작들과 겉모습이 상당히 달라 보이지만 사실 정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홍진 감독은 특정한 메시지를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기에 의미를 찾으려다 결국 무력해지는 것들에 대한.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규모는 천지 차이지만 <곡성>과 특히 2부작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만 <곡성>은 그래서 철저히 무너지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호프>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다.

다만 그 '저항'을 두고 <호프>가 <곡성>의 염세를 뒤집어 마침내 희망을 말한다고 요약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깔끔하기에 켕기는 부분이 생긴다. <곡성>에서 미지의 재난 앞에 선 인간은 '왜 하필 나인가'를 묻는 피해자였다. 그러나 <호프>의 인간은 같은 몰이해 안에 놓여 있으면서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를 가진 저 존재들의 세계에 영문도 모른 채 총구를 겨누는, 말하자면 '무단의 가해자'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은 무력한 희생자의 자리에서 벗어난 대신, 자신이 무엇을 파괴하는지조차 모르는 자리로 옮겨졌을 뿐이다. 저항은 하되 구원받지는 못하고, 살아는 남되 끝내 이해하지는 못하는 자리로. 그편이 낙관보다 훨씬 얄궂고, 어쩌면 훨씬 서늘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결말은 인간에게 승리도, 이해도, 구원도 끝내 허락하지 않은 채 열려 있고, 바로 그 '주지 않음'이 곧 이 영화의 논지다. '희망의 무력화'라는 이야기가 마지막 순간 인간에게 판을 뒤집을 한 방을 쥐여 주었다면, 앞선 두 시간이 통째로 거짓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제의 층위에서 이것은 좋은 열린 결말이다. 그러나 같은 결말이 '구조'의 층위에서는 오염되어 있다. 마블식 쿠키영상이 노골적으로 예고하듯 이 영화는 명백히 다음 이야기를 예비하며, 그리하여 이 열림의 일부는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장의 예고편이 된다. 더 나아가면, 그 속편의 존재는 이 결말을 단지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결말을 좋게 만든 바로 그것을 위협한다. <호프>가 단 한 편으로 닫힌 세계라면 인간이 가해자의 자리로 강등되는 저 서늘한 착상은 완결된 진술이지만, 이것이 '다음 편이 있는 1편'이 되는 순간 그 강등은 되돌아보면 한낱 설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주저앉을 위험을 안는다. 다음 이야기가 인간의 반격이나 이해로 향하는 순간, 완결된 비극은 한낱 막과 막 사이의 전환으로 주저앉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결말에 대한 평가는 어딘가 시한부다. 극장에 걸린 <호프>는 아직 단 한 편뿐이고, 그래서 이것은 단편으로는 좋은 열린 결말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장면이 그 서늘함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지는, 얄궂게도 이 영화에 관객이 덜 드는 데 달려 있다. 표가 팔리고 극장이 차서 2편에 청신호가 켜지는 순간, 인간이 영문도 모른 채 가해자가 되던 그 결말은 다음 편을 위한 밑그림으로 주저앉고 말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감독이 무려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이 결말은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애매해 보인다.

<호프>가 메타포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설명의 생략'인 부분이 많다. 세계관을 설명할 요소들이 더 있었다고 감독이 밝혔지만, 우리는 극장에서 상영된 버전만을 가지고 영화를 평가해야 하기에, 그 '생략된 설명'이 관객의 능동적인 사유를 촉구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보단 '불친절한 설명'이나 '미완성된 세계관'처럼 읽힐 지점들이 생겼기에 아쉽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외계+인>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호프>는 <외계+인>과 비슷해질 뻔 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외계+인>이 시점을 이리저리 전환하면서 영화 한 편의 에너지까지 스스로 식히고 소화시켜버렸다면, 본작은 끝까지 '순수한 에너지'를 잃지 않고 놓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에너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다른 걸 다 차치하고서도, 2시간 30분이라는 이 긴 시간 텐션을 계속 잡고 가는 나홍진은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 순수 에너지에 집중하고 집착하고 관철시킨 영화가 있던가? 한국 영화로 한정한다면 이 정도 스펙터클을 보여준 작품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규모와 야심 면에서 한국 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 감탄하게 된다. 촬영은 과할 정도로 아름답다. 순수한 'EPIC'의 면모로선 근래 최고의 작품이다. 야심도 재능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러나 미덕이 뚜렷한 만큼 결함 또한 분명히 뚜렷하다. 이제 CG 이야기를 해 보자. 공간과 내내 튀는 CG는 분명 어색하다. 특히 1부의 '바미기르'에서는 사뭇 인간의 형상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존재이기에,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텐데 그 부분이 매끄럽지 않았던 지점이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2부의 숲에서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에이리언 시리즈를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 썩 창의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거기에 간헐적으로 담당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는 모양새 또한 관객들에게 '불쾌한 골짜기'처럼 기능하는 듯한 인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이 '외계인'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최근 비슷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왕과 사는 남자>의 호랑이 CG의 경우, 나에게 그것은 문제였다. 호랑이는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이 땅 위의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작의 외계인처럼 노골적으로 '초현실', '비현실'적인 존재가 그 CG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 세상과 이격된 존재였기에 이해한다면 몰입을 크게 저해하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물론 제작의 단계에서 이것을 의도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대상이 초월적인 존재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신체 능력이 저렇게 강한 외계인이 어떻게 지능은 저렇게 모자라냐, 저게 말이 되냐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모든 영화의 외계인이 정해진 프로필대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니, 본작의 외계인들의 특징은 그냥 이 영화만의 설정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싶다. 어차피 상상의 존재를 디자인하는 일이니까.

<호프>의 가장 큰 미덕이 에너지라 말했지만, 그 에너지에서도 단점은 느껴진다. 특히 최후반부 하이라이트를 담당하는, 숲에서 빠져나온 후부터의 카체이싱 장면은, 시간적으로도 너무 길다는 인상을 준다. 공간의 형태도 바뀌지 않는 탓에 이미지적으로도 계속해서 '같은 그림'을 보는 아쉬움에 더해, 위기-구원의 구도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탓에 각각의 감흥은 되려 덜해지고 지친다는 느낌을 준다. 위기가 계속해서 등장함에도 그것이 변수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서스펜스의 한계이자 정수는 99℃라는 제한선에 있다. 서스펜스는 100℃에 도달하는 순간 서스펜스가 아니게 된다.

결국 <호프>는 뚜렷한 미덕과 뚜렷한 결함을 한 몸에 끌어안은 영화다. 장점이 있고 마땅한 큰 단점이 없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는 대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영화'의 리스트에 오르고, 더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 간의 차이만 있을 '모두의 사랑을 받는 영화'의 자리에 오른다. <쇼생크 탈출>의 예시가 바로 그렇다. 반면 장점이 확실한 반면 단점도 확실하게 관찰되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는 관객 각각의 감상에 따라 최고가 되기도 최악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명백히 보이는 그 장점과 단점을, 관객은 저마다 다른 크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떤 단점이 이 영화의 전반을 놓고 봤을 때 큰 문제가 아니라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그 단점이 영화를 불호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호프>는 이 경우의 작품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마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이다.

+ 나는 매체나 투표 등에서 밝혀지는 감독들의 '인생영화 리스트'를 자주 참고하는 편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형태의 영화들이 그 감독이 만들고 싶어하고, 만들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의 리스트는 그의 이전까지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한다면 놀랄 만큼의 명단이다. <백 투 더 퓨처>, <로보캅>,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트루 로맨스>. 이마무라 쇼헤이나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들로만 가득할 것만 같지만 사뭇 다르다. <호프>의 그 오락적 순도와 질주는, 어쩌면 나홍진이라는 인물이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작품에서 펼치기를 꿈 꿔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나는 영화관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에는 지지를 보내고 싶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눈먼 자들의 질주」 지도›「영화가 영화에 답하다」 지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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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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