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향하는 여성을 따라가는 카메라. 그녀가 향한 곳은 법정이다. 본작은 배심원의 눈으로 보는 법정영화인가? 싶어진다. 그러나 조금은 이상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법정영화는 대개 고정된 숏들을 가지고 칼같이 날카로운 전환을 보여주곤 한다. 그것이 팩트를 가지고 전쟁을 벌이는 법정이라는 공간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법정에선 대개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움직인다는 것은 연출자의 주관이 개입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작은 법정을 다룸에도 카메라를 움직인다. 아니 매우 자유롭게 공간을 유영하듯 거닌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망설임 없이 전환을 행하는 여타의 법정영화의 카메라와 달리 본작의 카메라는 몹시 특징적이게도 롱테이크를 즐겨 사용한다.
<레드 룸스>를 읽어가는 와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관객이 주인공에게 쉽사리 이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다. 그녀가 무엇을 궁극적으로 원하는지, 그녀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주인공 켈리앙을 뒤쫓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사실상 강제적으로) 한 발치 떨어진 채 관찰할 수밖에 없다. 분명히 다른 법정영화와는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이 사건이 아니라 인물들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에 있다. 희생자 모의 행적을 뒤쫓고 피의자 자체에 관심 있는 듯 느껴진다. 그녀는 이미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들을 입수했던 것인지 재판의 증거 영상이 비공개 시청으로 진행되는 순간에 아쉬워하지 않는다. 보지 못한 클레멘튼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순간, 분명히 화면 안에선 끔찍하단 말도 부족한 살육의 현장이 재생되고 있지만 그녀 켈리앙은 담담할 뿐이다.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이쯤에서 켈리앙의 직업에 대해 상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녀의 직업은 모델이다. 다시 말하자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이다.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료는 다름 아닌 스너프 필름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순간이 촬영된 영상이란 말이다. 모델은 어디까지나 연출된 복장에 연출된 행동과 연출된 시나리오대로 행동한다. 스너프 필름의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니까. 켈리앙은 그것에 감화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진정성이란 지점을 저 연출자(슈발리에)의 '작품'에선 도달해냈구나라고. 뒤틀린 동경이 집착을 빚어낸다. 그렇다면 켈리앙이 전날 밤부터 자리를 맡으면서까지 '오픈런'을 통해 법정에 출성하고, 피해자가 다닌 학교의 교복을 입고 변장까지 하며 법정에 출석한 까닭은 자신의 기준에서 최고인 슈발리에라는 '예술가' 앞에 서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반면 또 하나의 주연급 인물인 클레멘튼은 켈리앙과 조금 다르다. 그녀는 시종일관 슈발리에가 죄가 없음을 역설한다. 법정 밖에 서 있는 기자들 앞에서도, 생방송에 전화를 스스로 걸어서도 말이다. 엔딩에서도 그의 팬을 자처하며 인터뷰를 수행한다. 켈리앙은 클레멘튼이 자신과 같이 '예술가'를 동경하는 사람인 줄 알고 그녀에게 잘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클레멘튼은 '예술가'가 아니라 '아이돌'을 동경했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클레멘튼은 스스로의 관심 밖인 스너프 필름을 보곤 기겁했고 무엇보다 슈발리에의 안위를 관심 있어 한 것이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했고 대단한 몰입감이었다. 왜 국내에서 15세 이용가로 심의가 나온 건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이상한 정서와 소재다. 소리만으로 이 정도의 잔인함을 만들어 내는 작품은 드물다. 아주 낯설고도 성공적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