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놉시스 보기
“시대는 변해도, 친구들은 영원하다"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의 등장으로 온라인 세계에 모여들게 된 아이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보니’에게도 ‘릴리패드’가 생기게 되고, 장난감들은 점점 일상에서 밀려나게 된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별점과 글 보기 · 2,381자
글 보기 · 줄거리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대체자조차 시한부인 세계에서, 장난감은 주인공이 아니라 다리로 살아남는다.
이쯤 되면 이 시리즈는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하는 지점에 다다랐다고 단언해도 좋다. 다섯 편에 이른 프랜차이즈가 어느 한 편의 졸작도, 태작도 없이 저마다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지켜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희귀한 사건이다. 더 좋아하느냐 덜 좋아하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이 다섯 편 앞에서, 신작이 마주해야 할 가장 가혹한 비교 대상은, 외부의 어떤 걸작도 아닌 고루 훌륭한 전작들 그 자체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 5〉는 그 비교를 견뎌낸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완성도다.
영화는 시대에 어울리는 적을 데려온다. 전자기기, 그중에서도 '아이를 위한' 태블릿. 릴리패드다. 이 선택은 흥미롭다. 영화가 입으로 말하는 것뿐 아니라, 그 사물의 속성 자체가 무언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릴리패드는 기존의 장난감이 끝내 하지 못하던 것을 해낸다. 능동적으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오프라인을 대신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 낡지 않고, 퇴행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장난감의 완벽한 대체자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능과 '덜 유능'의 대결이 아니라, 유능과 무능의 대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단지 밀리는 것이 아니라,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용 태블릿'이라는 규정에는 시한부의 한계가 새겨져 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것 역시 더 나은 기능을 탑재한 제품에 자리를 내어줄 운명이라는 것. 영화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제시의 여정 위에 그것을 펼쳐놓는다. 그녀가 지나치는, '이제는 쓰이지 않는' 전자기기들의 묘지. 구형 기능을 단 채 아이가 자라버려 존재의 의미를 잃은 배변 훈련 장난감 스마티 팬츠, GPS를 품은 폴더폰 모양의 아틀라스, 카메라 장난감 스내피. 시대가 나아가고 주인이 성장했기에 자연히 퇴물이 된 그들은, 그러나 단지 과거가 아니다. 그들은 릴리패드의 미래이기도 하다. 릴리패드 또한 더 나은 기기 앞에서 얼마든지 대체될 사물이기 때문이다. 유능과 무능의 구도는 여기서 무너진다. 무능한 것은 없다. 다만 아직 퇴물이 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모든 사물은 시한부다.
그래서 제시의 분노는 어딘가 어긋나 있다. 너희 같은 전자기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이들로 남지 못한다며 그녀는 그들을 향해 화를 내지만, 그들 역시 신형 전자기기에게 밀려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사물의 다른 시점일 뿐인 세계. 제시가 미워해야 할 것은 릴리패드가 아니라, 릴리패드마저 집어삼킬 그 끝없는 갱신의 논리일 것이다.
"이건 아냐! 다같이 패드만 보면서 어떻게 친구가 된다고." 릴리의 이 말이 영화의 의견인지 궁금했다. 옳은 말이지만, 보수적이고 어딘가 나이브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2026년의 아이에게 태블릿을 내려놓고 장난감을 쥐라는 말은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만약 영화가 이 자리에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정당화하지 못하는 향수를 설교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히 영화는 자신의 대사보다 강한 논거를 그 안에 품고 있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역할놀이를 할 때, 총 세 번에 걸쳐 명백히 다른 질감으로 끼어드는 2D 애니메이션. 이 장면들은 아이들의 상상력 그 자체다. 이야기는 난장판이고 막장이지만, 바로 그 무질서가 핵심이다. 장난감은 완성된 콘텐츠를 건네주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능동적인 상상에 불을 붙인다. 태블릿이 제공한다면, 장난감은 점화한다. 이것이야말로 그 모든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태블릿이 끝내 하지 못하는 일이다.
자존심 때문에 더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겠다는 보니의 말에 또 한 번 버림받을 위기에 놓였을 때, '장난감 모드'로 축 늘어지는 제시의 모습은 시네마틱하다. 능동의 주체였던 인물이 한순간 사물의 무력함으로 되돌아가는 그 전환 안에, 이 시리즈가 평생 다뤄온 두려움이 응축되어 있다.
물론 완성도를 가지고 엄격히 따져 보자면, 〈토이 스토리 5〉를 최상단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흠들이 있다. "릴리패드 또한 보니를 진심으로 위하는 존재였다"는 명제는, 릴리패드가 스스로 기부 센터 박스로 걸어 들어가는 중반 이후부터 다소 급작스럽게 제시된다. 영화가 충분히 쌓아 올리지 못한 감정의 반전이다. 제시의 성장담이 1편의 그것을 답습한다는 점도 아쉽다. 새로운 위기 앞에서 그녀가 도달하는 깨달음은, 이미 한 번 통과한 자리다.
장난감은 더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저항해야 할 비극이 아니라, 받아들여 소화해야 할 사실이다.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시선으로 건너가는 다리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상상에 불을 붙이는 매개로 장난감의 역할을 다시 정의한다면, 그렇다면 장난감은 아직 잉여가 아니다. 그것은 기능으로 태블릿을 이겨서가 아니라, 기능이 끝내 줄 수 없는 것을 건네줌으로써 살아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