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은 롱숏이 많다. 스케일을 적극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주의성이 짙음에도 대규모의 순수한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청춘의 패기와 젊음이 느껴지는 저돌적인 연설 씬도 그러하니와, 이후에 펼쳐지는 졸업생들의 세리머니도 절대적인 규모로부터의 스펙터클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흑역사를 다루는 동시에 주인공들의 오랜 우정을 말하는 영화인데, 시간을 넘나드는 것 같은 연출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와이오밍 주로 이동하는 제임스의 모습을 비출 때나, 권력 싸움에 지쳐 비틀대며 자리를 피한 곳에 있는 빌의 오랜 친구 제임스의 모습을 보여줄 땐 마법과도 같다. 그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하여 나오는 회한과 탄식에서의 여운이 상당하다.
영화의 정신은 명확하다. 서부 개척은 성가가 아니라 애가였다. 터전을 잡고 살고 있던 토착인들은 이제 막 터전을 잡으려 하는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살생부를 작성해 말살시키려 한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문을 닫는 영화답게,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투 장면에서도 장르적인 요소들은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있다. 오히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상실된 멋으로 날것만을 보여준다. 피는 흩뿌려지고 통곡은 대지를 집어삼키지만 영화는 이를 어떠한 멋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고발의 영화이며, 이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 흑역사의 영원한 봉인이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도 영화가 남겨두는 것은 거센 감정과 절망 뿐이었다.
그 시대 할리우드의 예술가들이 공유했던 감각을 이 영화 역시 함께한다. 마틴 스콜세지가 검수하고 세르지오 레오네가 <원어아>를 만들면서 참고했을 것만 같은 작품. 분명히 흥행 실패작으로서의 무리함과 '타협 없는 태도'들이 성긴 구석들이 있지만, 그 프로젝트를 그저 수 십년 뒤에 감상하는 객의 입장으로선 이러한 순간들이 있었음에 그저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