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샘 페킨파는 폭력 미학의 거장이다. 강렬한 표현으로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며 연쇄적인 폭발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창조하곤 한다. 허나 2차 대전 동부 전선을 무대로 한 <철십자 훈장>은 그러한 오락적 테이스트가 상당히 사라진, 서늘하고 음울하기 그지없는 지옥의 공간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 영화는 전쟁을 오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슈타이너 소대원들은 각기 저마다의 이름이 있지만, 그 일원들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다.
과할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들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그러한 표현들이 전장의 참혹함과 허망함을 전달하는 데 오롯이 복무하므로, 그의 전작과는 다르다. 마치 물이 빠진 듯 채도 낮은 색감이나,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대 역시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광기는 <지옥의 묵시록>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밀리는 사운드는 마치 청각에서 잔상처럼 남는 이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투의 순간, 여러 공간의 순간을 숨가쁘게 교차하는 때는 아찔한 현장감에 절로 두려워진다.
미학적으로, 슈타이너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연출은 굉장하다. 샘 페킨파가 이렇게 테크니컬한 감독이었단 걸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전장에서 포탄을 맞은 후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나, 병원 내에서 환각 증세에 시달리는 모습을 연출할 때는 굉장했다. <허트 로커>의 원형을 보는 것만 같다.
제임스 코번의 역사에 남을 연기 역시 이 순간들을 완성했으리라.
독일 군인 주인공 일원들에게 감정을 담았다는 것이, 나치 일원에게 동정을 표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영화는 분명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히틀러 사진이 떨어지는 장면이 그렇거니와- 전쟁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새디스트인데 그 자신도 아마 그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라는 슈타이너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