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인지 당최 모르겠다. 내러티브가 있는 것 같이 흘러가는 일련의 부분마저 그 기대를 배반해버린다. '8개월 전', '16년 전' 등 언뜻 서사 영화의 형태를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점의 제시는 인과도 없고 맥락도 없다. 이것은 사실상 기만과도 같다.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기대를 품게 한 뒤, 내러티브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려던 관객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한 태도. 재미? 엔터테인먼트? 0에 가깝다.
그러나 100년에 가까운 과거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충격적이고도 창의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본작에서 '이미지가 충격적이다'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본작은 사실상 어떠한 맥락도 가지길 거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개 영화의 어떤 장면을 보고 충격과 놀람 등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이전까지의 숏들이 '논리'라는 상식에 기초해 연쇄적으로 배치되어 온 것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러나 <안달루시아의 개>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베네핏을 벗어던지고서도, 장면 자체의 개성으로만 우리에게 충격과 당혹감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의 시선에서 봐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남성과 여성의 인습을 풍자한다거나, 부뉴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종교 '체제' 조롱, 높은 수위의 표현 등, 이후 찬란했던 부뉴엘의 필모그래피의 정수와도 같은 순간들이 마치 이 영화에 예고편처럼 들어가 있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관습으로 이미 채워지고 있었던 영화계를 향한 조롱이자 사보타주이며, 어떤 텍스트도 없는 무(無) 뿐인 짧은 영화이지만, 그 무(無)로 가득 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