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전에
주의사항 5개 보기
시놉시스 보기
혹독한 추위가 닥친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 박제된 고래를 내세운 서커스가 찾아온다. 사람들이 천막 주위에 모여들고 외지인들의 등장으로 마을의 질서가 흔들린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별점과 글 보기 · 5,696자
글 보기 · 줄거리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저 조화와 질서를 믿었던 눈먼 자들이 민낯의 세계 앞에서 패배하는 순간
화로에 불이 꺼진다. 바의 사장은 이제 10시가 되었으니 모두 나가달라고 손님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이미 잔뜩 취한 손님들은 떠날 생각이 없다. 대신 그들은 '벌루시키'가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며 한 남성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 등장한 한 남성은 몇 인물들을 활용해, 우주의 일식을 그들에게 신비로운 화술로 설명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그 야노시는 상식과 진리를 믿는 자다. 세상과 우주적 진리를 찬양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에 있어 의심이 없는 자다. 초월적인 것에 대해 순진할 정도로 낭만을 품고 있는 자이며, 그것들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끝난 후 바를 나서는 야노시를 영화는 어둠 속의 한 빛으로 그만을 집중해 담아낸다. 빛이 드리워진 그. 이 빛은 그의 꽃길일까. 그러나 도무지, 이 빛을 꽃길이라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이 장면에 산재한 우울함의 기운을 나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벨라 타르의 빛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그의 영상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어둠이 아니라 빛에 있지만, 그 빛이 설명하는 것은 희망을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닌, 절망을 하이라이트하기 위해서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야노시가 모시는 스승은 에스테르다. 그는 야노시와 닮은 인물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것을 찬미하고, '세상의 일'에는 관심을 깊게 두지는 않는, 예술가이자 음유시인. 마을에선 현인으로 대접받지만, 피아노를 가지고 하는 일 외에는 미숙한 존재. 그 두 인물이 사는 마을에 변수가 들어온다. 거대한 화물차가 오더니,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볼 수 있는 기회라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우연일까, 그 시점부터 마을에 불안의 징후가 관찰된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최소한 우리들과 야노시에게는) 구전으로만 들려온다. 약탈이 시작됐고, 말썽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다고. 야노시는 그러한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야노시처럼, 세상의 일보단 다른 것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인물이 있다. 에스테르다. 무언가 성명을 발표하는 것 같이 보이던 그는, 이 사회에 대한 성명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인 음악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소신을 발언하는 성명을 녹음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의 어떤 예술가는 이렇듯, 세상 안에 살고 있으면서 세상과 이격된 공간에서 산다.
그런데, 세상의 어느 것과도 관계를 맺지 않은 듯한 예술가에게 실은 관계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상대방이 세상과의 사실상 단절을 선언한 예술가의 눈 앞에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튄데'라는, 에스테르의 전처가 찾아온다. 그녀는 강제로 에스테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사회의 이 혼란을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야노시의 시선과 동기화된 우리는 도대체 이 곳에 무슨 혼란이 있다고 그러는 건지 의문만 더해가는 동시에, 튄데라는 저 여성의 저의가 궁금해진다.
정말로 세상엔 무언가 일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초월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화물차 안에 들어가 고래를 감상하고 내려온 야노시에게 누군가 묻는다. 저 안에 왕자가 있다는데 맞냐고. 야노시는 어이없다는 듯 저 안에는 고래가 있다고 답한다. 그러나 에스테르와 함께 걷던 거리에서도, 왕자와 고래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시민의 아우성을 듣는다. 에스테르의 집을 봐 주는 가정부에게서도, '그들'이 불을 지르고 난리를 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난리가 났다고 떠들썩한데, 우리와 야노시와 에스테르의 눈에만 그 난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확인할 길은, 호기심을 무기 삼아 직접 가 보는 수밖에 없다. 믿지 않기에 두려움이 없던 야노시는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야노시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멍하니 서 있던 그들이, 이제는 그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들이 광장을 부수고 있어."라는 튄데의 말을 듣고 다시 가니, 이제는 한층 더 공격적으로 변한 듯한 그들이다. 불을 피우고 모여 있고, 고래 타령을 하는 야노시에게 꺼지라고 대꾸한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야노시는 화물칸으로 들어가 전말을 알고자 한다. 가지 말라는 충고를 야노시는 들을 생각이 없다. 그 안에는 분명 왕자가 있는 것 같다. 서커스 단원들도 이제 막을 수 없는 정도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왕자. 정말로 왕자는 아니었고 그저 붙여진 호칭이지만, 그의 말솜씨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고 응집하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끝내 카메라와 야노시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분명 현존하긴 한 것 같은 그 왕자라는 존재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선동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선동이 극에 달하자, 두려움 없이 호기심으로 지금껏 그들의 근거지를 활보하고 다니던 야노시마저 튕겨나간다. 겁에 질려 전력으로 도망치는 야노시의 뒤로 폭발의 섬광이 보인다. 야노시는 그러자, 그 불을 보고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간다.
아름다운 것, 초월적인 것을 보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서 관성적으로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이 선동과 파괴를 벌이는 아나키의 공간이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면, 그 호기심의 이명은 경솔함일 것이며, 호기심에 현혹된 채 윤리적 판단을 유예한 피상성일 것이다. 그 순진한 예술가에게, 최면이 걸린 자들이 세상을 파괴하는 비극을 눈 앞에서 목도하는 형벌이 내려진다. 그래서 야노시의 그 되돌아감은 야노시 스스로의 능동적인 선택처럼도 보이지만, 악의 에너지가 야노시와 같은 경솔한 예술가를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끌려간' 순간처럼도 보이는 것이다.
그럼 이제,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묘사할 차례다.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을 8분가량의 원테이크로 담아낸 장면. 사실 이 장면은 시작부터 진실성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걸어가는 모습을 문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내기 때문이다. 저들이 정말로 이 시간 동안 걷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당연하게도 없다. 카메라는 그들의 행동을 과장해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속도로 걷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폭력의 결과와 충격만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가는' 시간 자체를 함께 통과한다.
정신병원에 그들이 입장했을 때의 롱테이크가 인상적인 이유는 단지 오랫동안 컷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놀랍게도 이 장면에서는 컷이 없는데도 컷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는 행렬을 따라가다가 멈추고, 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며, 복도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그들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갈 때마다 문이나 벽의 경계가 컷을 대신하고, 카메라의 정지가 한 숏의 마침표처럼 기능하며, 다시 움직이는 순간에는 다음 숏이 시작된 것 같은 리듬이 발생한다. 벨라 타르는 편집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편집을 숏 내부로 옮겨놓는다. 카메라와 인물의 이동, 프레임의 비움과 채움, 정지와 재출발만으로 하나의 숏 안에 여러 숏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 점에서 이 장면의 롱테이크는 카메라의 기교를 앞세우는 종류의 롱테이크와도 다르다. 카메라가 인물 사이를 자유롭게 헤집고 다니며 자신의 운동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움직여야 할 이유를 얻는다. 그들이 걸으면 걷고, 그들이 멈추면 멈추며, 그들이 방으로 들어가면 함께 들어간다. 다만 그들의 뒤통수에 가까이 따라가지 않고, 마치 한 명의 사람처럼 조금의 텀을 두고 그들의 행적을 따라간다. 그래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촬영되고 있다는 인공적인 감각보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곁에서 목격하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그들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무표정하게 사람을 끌어내고 때리고 물건을 부수기에 더욱 무섭다. 정말로 무언가에 선동된 사람들처럼, 각자의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힘에 떠밀려 움직이는 집단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폭력에는 감정의 폭발보다 관성이 있다. 방을 하나 지나고 나면 다시 다른 방으로 향하고,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나면 별다른 동요 없이 다음 사람을 찾아간다. 편집이 있었다면 각각의 폭력은 개별적인 사건으로 잘려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타르는 그것들을 하나의 지속되는 시간 속에 묶어놓는다. 폭력은 사건의 연속으로 잘려나가지 않고, 멈추지 않는 하나의 흐름처럼 그려진다.
그러던 운동이 한순간 멈춘다. 벌거벗은 노인의 몸 앞에서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그들을 뒤따르던 카메라 역시 멈춰 선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육체가 오히려 그 순간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된다. 폭도를 막아선 것은 더 큰 폭력도, 군대도, 어떤 영웅적인 저항도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늙은 인간의 몸이다. 그들은 그 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자각한 듯 등을 돌린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여기에서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을 보고 폭력이 멈췄다는 사실을 전달한 뒤 곧장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걸어 들어온 만큼 다시 걸어 나가는 시간까지의 그 죽은 시간마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가 멈추는 순간만이 아니라, 그 분노와 폭력이 서서히 소거되고 사그라지는 시간까지 직접 겪는다. 리얼타임의 원테이크가 이토록 강력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영화는 폭력을 보여주는 데 시간을 쓰는 것만큼이나, 폭력이 그 힘을 잃어가는 데에도 공평하게 시간을 할당한다.
순간의 폭력은 소거되었지만 변한 세상이 되돌아가진 않는다. 야노시는 검거 대상으로 몰린다. 사실 야노시는 별다른 죄가 없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고, 사회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인물도 아니다. 그런 그에게 죄가 있다면, 세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호기심에만 이끌려 윤리적 판단은 차치한 채 경솔하게 설치고 다닌 죄일 것이다. 야노시는 모든 것을 봤다.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려졌던 튄데가 군 관계자와 접촉하는 것을 보며 그의 야욕마저 확인한 인물이다. 때문에 야노시는 죄 없는 인물이지만 가장 위험한 인물이며, 그는 도망가려 하지만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 (마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떠오르는 헬기의 등장과 함께) 야노시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리고, 그 곳에 야노시만큼 위험인물이 온다. 에스테르. 그는 아직 사회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듯하다. 왜일까. 그는 야노시에게 말한다. 자신은 집의 본채에서 쫓겨났고 정원의 한켠에서 겨우 살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이제 보통 피아노와 같게, 피아노를 다시 조율했다고. 에스테르는 양쪽에서 패배했고 항복한 자인 것이다. 현실에서 물러난 채 홀로 집에서만 틀어박혀 있고, 베크마이스터식 평균율을 거부한 채 '순수한 조율'을 꿈꿨던 자가, 집에서는 튄데에게 밀려 구석에 쳐박히고 피아노에서는 그가 반대하던 베크마이스터식 하모니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순진하고 경솔한 몽상가들의 끝은 이렇다. 설치고 다니다 격리되거나, 모든 면에서 패배한 채 근근이 연명하거나. 급식소에서 밥을 받아 온 뒤 어떤 가림막도 없이 광장에 버려져 있는 고래를 에스테르는 본다. 그것은 패배의 선언과도 같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조화와 질서를 믿었던 자들의 패배. 야노시가 본 고래는 고래라는 존재를 통해 어떤 초월적인 것의 가능성과 신비였고, 에스테르가 본 것은 그 가능성이 벗겨진 뒤 남은 투박한 물질이다. 벨라 타르는 묻는 듯 하다. 우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믿었던 것을, 모든 장식과 신비와 이야기를 벗겨낸 뒤에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