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A중대의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보다 '낯섦' 때문이다. 그들이 그곳에 당도한 까닭은 점령군이 아닌 '포로'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마치 개선군처럼 휘파람을 불고 제식을 갖춘 채 그곳을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괴리를 음악과 패닝의 단순한 연출만으로 이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데이비드 린의 능력일 것이다.
클로즈업이 거의 없고 바스트샷이 최대인 것처럼 느껴지는 데이비드 린의 거리감. 데이비드 린의 롱숏엔 기품이 있다. 마치 인물과 배경, 사건과 감정을 일정 거리 두기로 관조하게 만드는 이 시선은, <콰이 강의 다리>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시선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코미디적 효과다. 군의관 클립턴은 묻는다. "저들의 결과보다 우리가 굳이 더 잘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혹여 반역처럼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니콜슨은 반박한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이고, 그 진심이 문제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클립턴의 우려대로, 그곳에 있지 않았던 완전한 제3자의 시선에선 니콜슨의 그러한 행동은 그의 의도대로 읽히지는 않는 우스움을 남긴다. 다리의 건설을 마무리하는 니콜슨을 멀리서 지켜보며 워든 일행은 ‘다리 건설을 강요받아 일본군에게 착취를 당하는 불쌍한 놈들’이라 부른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순간, 사이토에게 자신들이 설치한 폭탄의 줄을 보여주는 니콜슨의 행동을 그들 일행은 '반역'으로 정의한다. 이처럼 '시선의 괴리'는 굉장한 코미디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본작은 그런 면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다. 바로 그 어긋난 진심들이 만들어내는 비극, 그리고 그 비극이 품고 있는 슬프도록 웃긴 장면들이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가 투 트랙으로 전환한 이후부터는 다소 전형적인 구조로 흘러간다는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시어스 '중령'의 에피소드들이 굳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는 러닝타임 내내 니콜슨의 시점으로만 영화를 끌고 가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절대적인 주인공은 러닝타임 언제나 니콜슨이었다. 다만, 광기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조금 더 치밀하게, 섬세하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분량적인 측면에서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의 스탠스 변화가 다소 성기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에도 거의 지루한 순간이 없다는 것은 본작의 강력한 장점이다.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사명감, 국가와 개인 사이의 충돌, 그리고 오해와 광기의 비극을 밀도 있게 끌고 간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의 오류를 깨달은 니콜슨의 망연자실한 표정과 함께, 정신을 잃으며 결국 자신이 스스로 스위치를 밀어 자신이 건설한 다리를 부수게 되는 결말은 허무하면서도 씁쓸한 블랙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