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태에서 능동태로의, 리액션에서 액션으로의 성장. 그 성장의 종착지는 균열과 파괴
10년 전 주인공의 남편 숀은 세상을 떠났고, 다른 곳에선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주인공은 새로운 남자와 재혼하려 하고, 그녀의 앞에 난데없이 10살배기 어린 아이가 등장하여 자신이 죽은 당신의 남편 숀이며, 지금의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말하자면 관객과 극중의 등장인물들은 이 기이한 광경을 '동시에'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이 허무맹랑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는 그 순간을 함축하는 숏은 아마도 아이가 그들 모두 앞에 등장하고, 화면엔 아이가 잡히지 않은 채 그를 보는 어른들의 '벙찐 리액션'만을 담아내는 숏이 될 것이다. 그래서 <탄생>은 (특히 안나의) 리액션이자 수동태에서 출발한다.
수동태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능동태로 전환된다. 아이의 언행들에 당황하고 대처하는 등 액션에 대한 리액션들만을 선보이던 안나는 점차 어떤 마음과 어떤 행동들을 스스로 행동(액션)하기 시작한다. (물론, 주인공의 스탠스가 리액션에서 액션으로 바뀌며, 수동에서 능동으로 바뀌었다 하여 그것이 반드시 해피엔딩을 담보하진 않는다. 이 영화가 그렇다.) 그렇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10살배기 어린 아이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안나의 마음 속에서 혼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안나의 진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일 테다.
어쨌거나 '공식적인' 이야기의 핵심은 아이의 진위였지만, 영화는 그 진위가 밝혀지는 순간 자체를 조금의 소재를 더해 풀어놓는다. 결국 그 아이는 거짓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야기를 쥐고 흔들지 못한다. 이야기의 가장 큰 비밀은 죽은 숀이 생전 친구의 아내인 클라라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변수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클라라였던 것이다. 숀의 프로필만을 외워 '행세'하는 아이는 전혀 몰랐을, '불륜'이라는, 이 세상에서 숀과 클라라 둘 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니콜 키드먼인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내가 그녀를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은, 정말 얼음과 같은 이미지의 배우라는 생각. 불과 같이 열정적이진 않지만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가 그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탄생>의 이야기는 얼음처럼 단단하고 냉정했던 인물에 균열이 가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얼음이 녹아가는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에 니콜 키드먼이라는 배우 이외의 인물을 떠올릴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이 이야기의 포맷 특성상 아역의 연기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정말 그럴 수도?'까지의 의심을 품게 바뀌어가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그것을 해낸 '캐머런 브라이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조나단 글레이저. 이 괴상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끝내 관철시키는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 기어이 관객으로 하여금 아이와 어른이 키스를 하는 장면(!)을 던져 주고도 그 자체 뿐 아니라 그 이면의 것을 읽게 만드는, 외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예술의 위치로 끌고 올라오는 그의 진정성에 감탄하게 된다. 그의 <탄생> 이후의 역사는 우연의 산물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