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 보더라도 큐브릭의 작품 같지 않은 본작의 느낌. 전작이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영광의 길>이기에 더욱 비교된다. <스파르타쿠스>는 <벤허>, <십계>와 더불어 고전 할리우드 대작 중 하나이지, 스탠리 큐브릭의 스타일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큐브릭 특유의 기하학적 구도나 감정의 이면을 드러내는 서늘한 시선은 이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아주 정석적인 풀 숏들과, 아주 정석적인 '감성적인'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안토니누스+바리니아의 시 씬'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장면을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마치 멜 깁슨이 기립박수칠 법한 장면이랄까. 큐브릭이 본작에서 전권을 쥐고 있지 않았음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큐브릭은 감독으로서 참여했지만, 이 영화는 명백히 '큐브릭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고전 할리우드 대작이 갖는 미덕을 충실히 지니고 있다. 그림처럼 각 잡힌 배경과 세트, 의상, 미술은 이제 너무나 티가 나지만, 오히려 그 티마저 멋처럼 느껴진다. 든든한 국밥 한 상을 받아든 느낌처럼, 익숙하고 정제된 고전 미학의 맛이 있다. 스파르타쿠스를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는 고전적이고 진취적이고 영웅적인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외모를 지녔다. 미래를 바라보며 자유를 외치는 인물의 상징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 흥미로운 구조적 특이점은 마지막 30분에 있다. 상식적으로라면 스파르타쿠스의 체포는 절정에서 끝났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작은 스파르타쿠스가 붙잡힌 이후에도 30분 이상 '다른 이야기'를 한다. 크라수스의 '청소'와 '구애'가 이어지고, 무엇보다 스파르타쿠스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를 상세하게 그린다. 역설적이게도, 스파르타쿠스가 온몸을 내던진 2시간 40분보다, 그의 여정이 멈춘 후의 30분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 마지막 30분의 정점은 안토니누스와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에 의해 결투를 강요받는 장면이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죽여줘야 하는, 상대가 조롱당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끝내줘야 하는 싸움이다. 처연한 역설과 함께, 이 장면은 본작이 던지는 질문을 응축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살 것인가?"
스파르타쿠스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바리니아와 자식은,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자유인이 되었다. 그들은 스파르타쿠스(와 그처럼 자유를 갈망했던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가로질러 자유의 저편으로 향한다. 그의 행적은 하나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식으로 포장된 2시간 40분보다, 그 이후 30분이 더 가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