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부부의 집에 에바의 어머니 샬롯이 찾아온다. 여느 모녀 사이가 그렇듯 에바는 샬롯을 따뜻하게 맞으며 정성스럽게 대접한다. 베리만의 영화 치곤 비교적 평이하게 흘러가는 듯한 인상을 받을 무렵 이야기의 동력을 제공하는 두 가지 요소가 촉발된다. 샬롯이 미처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요양원에 방치해 두었던 둘째 딸 헬레나가 이 에바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첫 번째이며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샬롯의 성화에 못 이겨 그녀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는 에바의 모습이 두 번째이다.
전자의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샬롯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헬레나의 앞에 다가가 애써 듣기 좋은 말들을 내뱉지만 여전히 언짢고 불편한 그 진심을 가리지는 못한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매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주가 진행되는 한편에선 어색하고 지독한 정서가 흐르는 양가적인 공간의 전시를 확인하게 된다. 관객은 모녀간의 관계에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분명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일 한밤중에 벌이는 모녀간의 대화 시퀀스에선 두 주인공의 감정적인 격랑이 가장 거대해진다. 단순히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에 박히는 대사들의 밀도가 상당해 관객 역시도 그 감정의 소모가 엄청난 시퀀스이다. 에바의 관점에서, 어머니 샬롯은 권위 있는 피아니스트였기에 사회적인 지위와 자존심이 거대한 인물이었으며 가족의 유대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우선한 인물이었다. 샬롯은 딸을 잘 알지 못했으며 어설프고 서투른 감정 표현만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아이가 자신에게 부리는 어리광을 귀찮아했다. 어린아이였지만 어머니의 그러한 마음을 에바 스스로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샬롯 역시 자신이 가정에 소홀한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늘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만회하고자 에바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지만 매번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이 행하는 일방적인 공세를 정당화했으며, 에바는 어머니를 차마 미워할 수 없음에 미움이라는 감정의 형태가 공포라는 두려움으로 변모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샬롯은 훌륭한 연주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로선 낙제점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나 샬롯의 관점에서도 할 말은 있다. 그녀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을 누리지 못했기에 사랑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갖고 있지 않으며, 나이는 먹었지만 성장하지 못한 노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딸인 에바에게까지도 위로가 필요했던 인간이 바로 샬롯이었다. 그녀 또한 무력한 존재였던 것이다.
헬레나라는 존재는 영화에서 꽤나 미묘하게 다뤄진다. 헬레나는 샬롯에겐 항상 성가신 존재였으며 에바에겐 여전히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는 원인인 존재이다.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레오나르도와 헬레나 간의 미묘한 연정이 있었음을 샬롯은 알지 못했으며 헬레나는 레오나르도가 떠난 이후 병증의 강도가 보다 악화되었다. 샬롯과 에바의 설전이 극에 달할 무렵 교차되는 헬레나의 모습은 이 가족의 위태함을 한층 강조시켜준다. 물론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나 영화 후반 몇 번의 감정적인 장면 등에서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만 감정을 몰고 가는 듯한 아쉬움도 존재한다.
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 중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돋보이는 영화일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리브 울만 두 배우의 훌륭한 능력도 그 까닭이었겠지만 인물들이 감정을 극한으로 쏟아내게 하기 위해 그들의 관계와 공간을 치밀하게 설정한 베리만의 디렉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마도 경력 최고의 연기였을 잉그리드 버그만의 억척스러운 연기는 단연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