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영화'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뉴욕의 거리, 재즈 음악, 변하는 사랑 등. 때문에 많은 이들은 우디 앨런의 영화가 단조롭고 "매번 똑같다" 라며 투정하곤 한다. 그들에게 반박하는 뜻에서 보여주고 싶은 우디 앨런의 영화들 중 첫째는 단연 <젤리그>일 것만 같다.
<젤리그>는 흥미로운 영화다. 레너드 젤리그라는 인물을 다큐멘터리의 작법으로 회고하며, 흑백으로 된 자료화면과 컬러로 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가 교차된다. 헌데 이 레너드 젤리그라는 인물은 우디 앨런이 연기한 가상의 인물이다. 즉 모큐멘터리인 셈이다. 인물을 연기한다는 '극'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가장 리얼한 포맷일 다큐멘터리 장르를 선택한 우디 앨런은 영리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설정, 이 영화를 통해 우디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레너드 젤리그는 늘 어딘가의 조각으로, 파편으로 발견된다. 뉴욕 양키스 훈련캠프에서, 시카고 주점에서, 젤리그는 '그들'과 함께인 듯 같은 집단인 듯 등장한다. 젤리그는 어딘가의 '구성원'으로 발견되며 곁에 있는 누군가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때문에 '인간 카멜레온'이라는 별칭을 얻은 젤리그는 사실 그저 주변과 조화되어 소속감을 가진 채 살고 싶은 인간이었을 뿐이었지만 세상은 그를 단지 돈벌이로, 구경거리로 이용했을 뿐이며 젤리그는 여전히 방치된 삶을 살 뿐이었다.
명백히 레너드 젤리그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남에게 영향을 받는 삶을 살고 남을 위해 사는 까닭에 정작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사는 모습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젤리그의 수난에 마냥 웃을 수 없다. 그의 모습 어딘가에선 분명히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테니 말이다.
상술한대로 우디 앨런은 세상을 향한 통렬한 풍자를 선보이는 동시에 혹여 논쟁이 될 수 있을 민감한 부분을 회피하는 기민함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