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느끼는 것이지만, 러시아 영화, 특히 구소련의 영화에는 할리우드를 위시한 영화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매끄럽지 않고 일견 과장되고 극단적이기까지 한 감정들, 실내가 아닌 실외의 로케이션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아우라,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들, 그리고 '비타협적인 탐미주의'. 물론 구소련의 영화들은 사회주의라는 형태 아래 제작된 작품들이기에 선전물의 위험한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필름메이킹이라는 형태에 있어서 '러시아 영화'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그들만의 개성은 분명한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학이 난다>의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이를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놀라운 촬영이다. 카메라는 종과 횡을 넘나들며 날카롭게 움직인다. 베로니카가 버스에서 내려 전차 사이로 지나가는 그 유명한 롱테이크는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대사 없이도 개인의 혼란뿐 아니라 시대적 혼란까지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 장면에서 살벌하게 늘어선 전차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은유가 된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껏 과장된 감정의 장면들이다. 공습이 시작되며 마크와 베로니카의 공간을 헤집어 놓을 때, 갑작스러운 마크의 사랑 고백과 혼돈에 빠진 베로니카의 감정적 격랑은 실제 공습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 공습은 마치 그들의 감정을 위한 은유로 사용되는 것 같다.
마을을 헤집어 놓은 또다른 공습 이후, 끝까지 집에 머문 부모님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베로니카를 로우앵글과 거친 미술로 포착할 때의 위태위태함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이동하고, 한 장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분명한 확신을 가진 듯 각 장면의 임팩트가 굉장히 크다. 영화적 자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군중을 담는 장면들도 놀랍다. 베로니카를 거대한 철문 밖에서 기다리는 보리스의 모습에서 시작하지만, 카메라는 곧 그의 주변에서 헤어짐을 슬퍼하는 수많은 남녀와 가족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돌린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와 역사의 무게를 동시에 담아내는 탁월함이다.
또한, 보리스가 총에 맞아 비틀거릴 때 그의 시점을 담은 숏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휘청이는 그의 몸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숲의 나무들, 디졸브되며 나타나는 회상과 상상은 영화적 기법의 탁월함을 다시금 증명한다.
자신의 현 상황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베로니카가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 듯 묘사된 카메라의 광기 어린 움직임은 시대를 고려할 때 더욱 놀랍다. 영화는 카메라가 과연 마음을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제시한다. 역대 가장 위대한 촬영 중 하나로 꼽기에 충분한 성취다. 영화에서 카메라의 역할이 크게 '진실과 윤리'를 탐구하는 역할과 '장식과 규정'을 담당하는 역할로 나눌 수 있다면, 후자의 영역에서 이 영화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
다만, 영화의 엔딩은 아쉬움을 남긴다. 마치 영화가 권위적으로 "네 죄를 사하노라"라고 선언하는 듯한 시선과, "소련의 모든 여성은 이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주제의식은 문제가 있다. 오프닝과 연결되는 학 떼의 등장은 과하게 직설적이고,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비하면 놀랄 만큼 덜떨어진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준 환상적인 것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엔딩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