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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악질 형사인 주인공은 마약 거래에 관련되어 있고 갱에게 돈을 갚지 못해 그들에게 위협까지 받고 있는 신세다. 그는 소녀 둘을 협박하여 자신의 자위행위에 이용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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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용서 뿐
주인공이 빌런인 작품은 간혹 존재하지만, 어떤 애정도 생길 수 없을 정도의(아니 어쩌면 가져서는 안 될) 행적들을 선보이는 주인공은 흔하지 않다. 그것도 단지 '애정이 생기지 않는 인물' 수준에 그치지 않고, '불쾌감이 생기는 보기 싫은 인물' 수준이라는 것도 흔하지는 않을 테다. 그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거칠게나마 직업의식이 남아 있는 여타의 ‘안티 히어로’ 경찰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마약을 단속해야 하는 위치임에도 마약을 구매하고 치사량으로 흡입하며, 멀쩡히 가정이 있음에도 사창가에서 술과 매춘을 즐긴다. 마트에 강도가 들었을 때는 드디어 본분을 다하나 싶지만, 강도들이 갈취한 돈을 자신이 챙긴다.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인물을 정의하는 한 숏이 있다. 승용차에 탑승하고 있던 두 여성이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 이미 군중들마저 모인 한참 뒤에야 나타난 그는 시신의 얼굴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곧 그녀의 가슴에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야구 경기 베팅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는다. 그는 수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경기 정보를 나누러 온 것처럼 보인다. 수녀가 강간당한 사건 앞에서도 그는 위악적인 언사로 교회를 비웃는다. 동료마저 "너는 최소한의 존중마저 엿 바꿔 먹었냐"고 할 정도다. 그러고는 병원에 간 수녀의 나체를 훔쳐본다. 누가 누구에게 썩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미 그에 대한 혐오를 가지기에 충분했음에도, 최악은 따로 있다. 한밤중 여성 두 명을 차에서 끌어내려 연행하려는 척하며 멈춰세운 뒤, 자신의 욕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사람이 아닌 짐승을 보는 듯한 인상. 그는 브레이크 없는 막장의 인생을 달린다.
그러나 수녀의 존재는 그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는 수녀. 납득하지 못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밤중에 자신의 집을 찾아가지만 자식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서성이다가 떠난다. 드디어 그는 썩어가던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클럽에 가고 술을 마시지만, 예전처럼 즐기지 못한다. 허둥대고, 분열하며, 어딘가를 배회한다. 해소되지 못한 혼란과 막힌 감정은 그를 압도한다.
그는 수녀를 다시 찾아가 따지듯 묻는다. "그들은 곧 나올 미성년자들이다. 당신도 마음 깊은 곳에선 벌주고 싶지 않냐. 난 정의를 실현할 거다." 수녀가 "이미 그들을 용서했다"고 하자, 그는 분노한다. "당신이 그런 권리가 있냐. 당신이 유일한 수녀가 아니고 유일한 여자가 아닌데, 그런 용서가 핏자국을 남기면 어쩔 거냐. 당신이 그 짐을 다 질 수 있냐." 수녀는 조용히 답한다. "주님께 얘기하세요, 기도로." 그는 결국 신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런 사건이 생겼는데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며 신을 욕하지만, 이내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 울분은 결국 신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오래전 선한 의지로 경찰이 되었을 때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의 괴리를 마주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너에 몰리고 심적으로 극한까지 다다른 그는 성당에 가서 엎드려 회개하고 구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흑인 아주머니는 성배를 제자리에 놓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범인들이 있을 거라는 직감을 갖고 그곳을 습격해 범인 둘을 체포한다. 그들의 죗값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자신이 지인의 집에서 받은 3만 달러가 든 상자를 건네며 그들을 LA로 보내준다. 그는 처음으로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과 별개로 흘러간다. 냉정하고도 무심한 세상은 수지타산의 논리로 움직이고, 계속해서 판을 벌려놓던 그의 겜블러 기질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채권자는 차를 잠시 멈춘 틈을 타 그의 머리에 총을 쏜다. 안타까우면서도 냉정한 결말. 물론, 구원은 자신의 '행동', 자신의 '선행'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테다.
사실 나는 여타의 '전도 영화'보다 이 영화의 회개 장면에서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타의 '전도 영화'에선 치열한 고뇌와 번민의 흔적을 좀처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이 바르다 하여 그때까지의 어설프고도 나이브한 전개를 넘어갈 수는 없다. 강요하는 신앙, 강요하는 감동은 수명이 짧다. 모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하비 케이틀의 미친 연기"라는 한줄평을 남겼다. 처음엔 너무 손쉽게 한줄평을 만든 것 아닌가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나은 한줄평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악마의 얼굴과,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의 얼굴을 한 작품에서 모두 연기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말이 우습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고, 눈물로 무릎 꿇고 회개하는 모습은, 연기를 넘어 한 인간의 진심어린 회개 같았다. 각본도 훌륭했지만, 하비 케이틀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