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 초반부터 이 세계의 비주얼을 자랑하듯 보여준다. 물론, 이 정도의 환상적인 비주얼이라면 자랑할 만 하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이 두 세계관으로 영화계에 할 일을 모두 마쳤다. 절망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세계를 지배하지만 매혹적인 비주얼을 거부할 수 없다. 실로 최면적인 비주얼에 기꺼이 속고 싶은, 퇴폐미 영화의 정석과도 같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북마크처럼 들어오는 비주얼. 어떤 도시의 전경 혹은 수직으로 뻗은 마천루의 아우라 등. 이 영화는 내러티브의 영화는 분명히 아니다. 하나의 '세계'의 영화다. 탐정영화의 플롯에 추격전에서도, 관심 있는 것은 추격이 아니라 그곳의 공간인 것만 같다.
소재로 인한 철학적 논의도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의 첫 씬은 레플리칸트와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레이첼과 같이, 자신이 인간이라 믿어왔던 인생이 한순간에 부정당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조차 품지 않는 데커드는 진정 인간일까, 혹 레플리칸트는 아닐까.
로이 베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만든 이들을 찾아가 살해한 뒤, 기어이 자신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타이렐 회장마저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는 과정은, 금기에 가까운 친부 살해 모티브일 뿐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그 장엄한 역사를 향한 고찰이다. 로이 베티는 '창조주에 대항하는 루시퍼'이자, '자신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한 예수'의 모티브를 동시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캐릭터다.
이 영화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데커드나 로이 등의 감정이 너무 튄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기도 했고, 영화의 비주얼과 로이 베티의 퍼포먼스가 아니었다면 후반부 장면은 액션씬이라 하기도 민망한 그런저런 장면이다. 그럼에도 상술한 특장점들과 성취들은 이 영화를 고전의 반열에 올릴 수밖에 만드는 요소들이다.